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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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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제국의 아이들이 부른 「개사곡」 노래의 가사를 바꾸어 부르는 {改詞曲|개사곡} 문화는 전 세계 어디에든 존재할 것이다. 일본에서는 「{替え歌|가에우타}」라고 하는데, {戰時|전시} 체제 하에서 발생한 {改詞曲|개사곡}은 군가를 통해 이념적 통제를 {企圖|기도}한 {爲政者|위정자}와 {軍部|군부}의 뜻에 반항하여 {反戰|반전}의 의사를 드러내는 일종의 집단적인 저항 행동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특히 태평양 전쟁 말기에 {學童疎開|학동 소개}에 의해 강제 소집되어 가혹한 집단 훈련과 노동을 강요받은 「아이들」에게 있어, 다분히 사상적인 군가와 전시가요의 가사를 비틀어 동료들과의 「일체감」을 형성하는 행위는 심리적으로 큰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戰時下|전시 하} 일본에서 태어난 {民謠|민요} 가수 {笠木透|가사기 도루}는, 장난기 가득한 일..
나무위키 임시조치의 악질성 나무위키는 한심한 사이트이다. 학술 문서의 부정확성 및 허위성은 이루 말할 것도 없으며, 기타 어떤 주제에 있어서도 나무위키 문서의 반은 참, 반은 거짓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정확한 정보를 파악해야 하는 어떤 분야의 {初學|초학} 입문자에게 나무위키는 그다지 열독을 권장하지 않는 사이트이며, 숙련자에게 있어서도 굳이 쓰레기 잡탕 정보 온상인 나무위키를 참고할 이유는 별로 없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를 너그러이 봐준다 쳐도, 사이트의 특성상 작성자의 책임이 분산되어 결국 아무도 법적인 제지를 받을 수 없다는 구조 탓에, 일개인에 대한 편향적 서술 및 허위 정보가 공공연히 기재되어 다수에게 전파되는 문제는 심각하다. 사람들은 나무위키가 쓰레기 사이트라는 인식에 동의하면서도 그곳에 기재된 정보를 맹..
‘대국민 저항권’은 半문맹국다운 표현이다 {國民抵抗權|국민 저항권}도 아니고 {對國民抵抗權|대국민 저항권}은 대체 무엇일까. ‘대국민 저항권’이라는 표현에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는 {對國民|대국민} 담화를 {大國民|대국민} 담화라고 이해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뒤늦게 ‘大 + 국민 저항권’이라는 궤변으로 변명하려 해도 소용없다. ‘대⋯⋯권’의 구조를 가진 표현은 기본적으로 어떠한 대상에 대한 모종의 권리를 의미하지, 모종의 ‘큰’ 권리나 ‘큰’ 모종의 권리를 의미하는 일은 일반적으로 없다. ‘대⋯⋯외교’ ‘대⋯⋯담화’ ‘대⋯⋯정책’ 등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설마 식자층이면서 ‘대국민 담화’의 뜻을 모르는 의무교육 과정 수료자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기 때문에, 차라리 {大東亞共榮圈|대동아공영권}이라는 표현에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믿..
말차를 음미하고자 녹차(센차·교쿠로)의 세계로 나는 꼬맹이 시절부터 남들이 쓰다고 기피하던 ‘말차맛’ 디저트(물론 설탕이 엄청나게 들어가지만 어린 아이 기준에서는 씁쓸하다고 느낄만 하다)를 선호했던 탓에 한동안 내가 ‘말차’에 대해 충분히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내가 접해온 말차라는 것은, 그 향미를 香과 味로 나누었을 때 전자에만 해당하는 반쪽짜리에 불과하였다. 그것은 그동안 말차를 茶로서의 본연의 맛으로 대할 기회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게 언젠가 지인의 소개로 마루큐 고야마엔丸久小山園(이하, 고야마엔) 말차를 마셔볼 기회가 주어졌는데, 나는 ‘말차맛’ 라떼와 같은 그런 대중적인 말차 향을 좋아했기 때문에 정석적인 말차 역시 쉽게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착각하였다. 당시에 마신 운카쿠雲鶴 말차는 내가 지금껏 말차라는 카..
요리 (1) – 산시성의 명물, 량피 차갑게 먹는 렁차이冷菜의 일종인 량피凉皮는 내게 있어서는 추억의 샤오츠小吃로, 중학생 시절에 마트에서 저렴하게 파는 산시陝西식 량피를 사와 먹고는 완전히 빠져들게 되었다. 넉넉하게 두른 즈마장芝麻醬의 고소한 감미, 진강향초鎭江香醋의 고급진 산미, 무엇보다 윤택하며 탱글거리는 투명질의 량피 면(중국에서는 통상 량피를 면이라고 부르지 않지만 이 글에서는 이렇게 칭하기로 해둔다)의 식감은 아주 재미있다. 잘 알 수 없는 향신료로 우려낸 마늘 물과 고추기름의 복합적인 향미는 화룡점정이다. 해당 마트가 문을 닫으면서 한동안 량피를 먹지 못하다가,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산시 량피를 구입해먹기도 하였고, 배달 음식이 태동하던 시기에 비로소 전문점에서 판매하는 량피를 다시금 접하게 되었다. 중국 요리 매니아로서 정석적인..
JSCCC 《학회통신 한자지창》 6권 2호를 읽고 2022년 12월에 일본한자학회JSCCC에 찬조회원으로 가입하고 벌써 두 해를 맞이하였다. 그동안 찬조회원에서 정회원이 되었는가 하면, 이곳에서 발행하는 학회지와 회보지를 통해 많은 양서良書와도 만날 수 있었다. 얼마 전에 도쿄외국어대학(TUFS)에서 개최된 학술대회에 참여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회비를 납후할 계획이므로 내년 학술대회에는 꼭 참여할 작정이다.일본한자학회JSCCC는 2018년에 설립된 신생 학회로, 연구자와 취미가의 교류가 활발한 회풍이 특징이다. 한자 문화가 사장되어가는 한국과 달리, 일본에는 트위터를 중심으로 한자와 관련된 폭넓은 주제에 깊은 흥미를 가지고 활동하는 취미가들이 굉장히 많다. 이들 상당수가 지명·인명에 쓰이는 희귀 한자와 일본의 역사적인 국자國字 등..
머저리에게 고함 제목의 告는 去聲임. 나는 애초에 타인에게 무관심한 탓에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에게 지적받아왔으므로 적어도 남들이 보기에 나의 인간관계에 대한 무관심은 분명한 모양이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실로 무관심하다. 그러나 혹여 나에 대한 비방·중상이 유포되는 것은 우려스럽기 때문에 비정기적으로 에고 서칭을 하고는 있는데, 내가 본바 그 어떠한 문서에조차 제대로 된 기술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그러니까 마치 비틀어버린 고사목처럼 거추장스러우며, 무질서한 집단지성에 대한 내 불신을 강화하기만 할 뿐인 쓰레기 가십 사이트인 ‘나무위키’에 다시금 망상에 기반한 비방적 기술이 새로이 추가되었기에, 이렇게 변론의 자리를 마련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긴 글을 할애할 생각은 없다. 본론으..
에키벤 탐미 (1) – 오후나켄의 「샌드위치」 올 9월 중순에 JR{東海|도카이}가 운영하는 {東海道|도카이도} 신칸센을 탈 기회가 생겨 예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던 에키벤 문화도 체험하게 되었다. 왜정시대 조선에서 판매되었던 에키벤에 관한 기사를 읽은 뒤, 흥미를 가지고 {포장지|掛け紙}를 중심으로 에키벤의 역사를 설명하는 책 두 권을 구입하여 내리 읽은 적이 있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 역사 깊은 에키벤에 대한 관심, 그리고 차창 밖을 바라보며 에키벤을 먹는 경험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커져갔다. 마침 직접 체험해볼 기회가 마련된 것이다. 아직도 재래선은 건재하지만, 일본에서는 신칸센의 보급과 함께 에키벤 문화의 본연의 역할은 다소 {形骸化|형해화}한 감이 있다. 뿌연 매연을 내뿜으며 달리는 열차가 환승이나 연료 보급을 위해 잠시 머무는 정차역에서..
미야코섬 여행 (3) - 호우 속 대교를 가로지르다 갱신을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어느새 겨울이 되었습니다. 거의 여덟 달 전에 작성한 1일차, 2일차에 이어서 3일차 기행문입니다. 글이 너무 길어져서 3일차 전반부만 싣고 나머지 분량은 다음 글에 양보하겠습니다. 이 날은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나와 있었기 때문에 미야코섬 방문 일주일 쯤 전에 미리 택시를 대절해두었습니다. 제가 이용한 업자는 마루치쿠 택시로, 저는 가장 저렴한 3시간 코스를 예약했습니다. 웹사이트에는 모델 코스를 시간 별로 제시하지만, 저는 제가 계획한 코스를 직접 입력하여 기사님께 요청했습니다. 당초 제가 요청한 동선은 미야코섬의 남쪽과 북쪽에 위치한 이도離島로 가는 대교를 가로지른 뒤 유키시오 제염소製鹽所를 견학한 뒤 동부 연안을 달리다가 두부 요리집에 하차하는 것이었으나 호우와 휴업 등..
오에도 골동시 방문기 外 간만에 진보초 고서점 거리에 가볼까 채비를 하는데 생각해보니 일요일이었습니다. 일요일에는 문을 열지 않는 서점이 많아서 고민하던 찰나, 나가타초를 가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나가타초에는 일본 국회도서관이 있으며 조금 걸으면 ‘황거’도 멀지 않습니다. 즉, 독서한 뒤 산책하기 좋은 동네입니다. 그러나 이날은 독서하고 싶은 기분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다가 Chrome 모바일 앱의 Discover 페이지에 ‘오에도 골동시’ 웹사이트가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마침 이 날 유라쿠초역 앞 도쿄국제포럼에서 골동품 시장이 개최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예전에 베이징 판자위안潘家園의 골동품 시장에 방문하여 소소한 잡동사니를 구입했던 즐거운 기억이 떠올라 더위를 무릅쓰고 집을 나섰습니다. 또한 마침 며칠 전부터 야후옥션 ..
평화누리특별자치도는 왜 기괴한가? 2024년 5월 1일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새 이름 대국민 보고회’에서 공개된 가칭假稱 경기북부특별자치도의 새 이름은 ‘평화누리특별자치도’입니다. 처음 이 지명을 전해듣고 농담인 줄 알았습니다. 제 주변 사람들에게도 알려주니 ‘저게 공식 명칭이에요?’와 같은 반응이 돌아왔습니다. 세상에 평화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역사적으로 평화를 지향하여 명명된 지명은 적지 않습니다. 중국 난징의 옛 지명인 건강建康과 일본의 헤이안쿄平安京 등은 노골적으로 평화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지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평화누리특별자치도는 제 인상으로는 평양지하철도 천리마선과 혁신선의 역명을 보는듯 합니다. 일반명사의 조합이며 이념적인 성격을 갖는 평화누리특별자치도는 작위적이며 경기북도 주민의 의견을 반영하지 못합니다. ‘평화누리..
비파괴 북스캔 경험을 극적으로 개선하는 법 저처럼 역사비교언어학을 취미로 갖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은 늘 더 많은 자료를 손에 넣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다양한 자료를 손에 넣게 되면 그만큼 풍부한 취미 생활이 가능해집니다. 서울 소재의 국립중앙도서관, 도쿄와 교토 소재의 국립국회도서관, 아니면 소속된 기관의 도서관에 가면 대체로 원하는 자료는 다 손에 들어옵니다. 물론 큰 도서관에 간다고 해서 모든 자료가 있는 게 아닌지라, 저는 아이신교로 울히춘 교수의 몇몇 저서를 수 년째 찾고 있지만 아무런 진전이 없는 상태입니다. 읽고 싶은 책과 논문을 찾기 위해 도서관을 방문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당연한 일일까요? 현대 사회에서 궁금한 것, 잘 모르는 것을 찾아보기 위해 사람들이 이용하는 가장 보편적인 매체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와 생성..
출판물 단행본《향문천의 한국어 비사: 천 년간 풀지 못한 한국어의 수수께끼》 김영사. 2024년 2월 10일 발매.잡지〈펠리오의 촛불〉 《월간 좋은생각》 2024년 7월호.
미야코섬 여행 (2) – 먀군의 푸른 산호 바다 미야코섬 여행 (1) – 프사라 역사·문화 기행영상 내레이션을 염두에 두고 작성된 글이므로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일본 국내에서도 “요즘 화제의…”라는 수식어가 붙을만큼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는 관광지인 미야코섬예보대로 아침부터 비가 내렸습니다. 여행 2일차인 오늘은 미야코섬에서 가장 저렴한 교통수단인 노선 버스를 타고 섬의 남쪽 먀군宮国=미야구니 지구로 이동합니다. 미야코섬에는 교에이 버스協栄バス에 의해 관광 버스, 노선 버스, 택시 등의 대중교통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노선 버스의 경우 미야코섬 안에서 달리는 1–5계통과 시모지 공항까지 연결되는 9계통의 총 6가지 노선이 존재합니다. 이 중 제가 주로 탑승한 노선은 5계통 신자토미야구니선新里宮国線입니다. 일본은 교통비가 비싸다는 인식이 ..
미야코섬 여행 (1) – 프사라 역사·문화 기행 영상 내레이션을 염두에 두고 작성된 글이므로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일본 국내에서도 “요즘 화제의…”라는 수식어가 붙을만큼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는 관광지인 미야코섬宮古島. 오키나와현에 속하는 미야코섬은 푸른 산호초가 아름다운 남방의 망망대해 위에 자리하는 까닭에, 많은 사람들이 오키나와의 아류일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야코는 문화적·언어적·정서적인 측면에서 오키나와섬과 판이하게 다르고, 류큐왕조 내에서 어느 정도 독립적인 역사를 가졌으며, 시야를 미야코 열도로 좁혀 보아도 다양성이 넘치는 매력적인 지역입니다. 여태껏 상대적으로 덜 유명했던 미야코섬의 인기가 치솟는 와중에, 한국에서도 2024년 5월 29일부터 저가 항공사 진에어의 서울↔미야코 직항선이 취항하면서, 국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