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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고/미식

에키벤 탐미 (1) – 오후나켄의 ‘샌드위치’

올 9월 중순에 JR도카이가 운영하는 도카이도 신칸센을 탈 기회가 생겨 예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던 에키벤 문화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왜정시대 조선에서 판매되었던 에키벤에 관한 기사를 읽은 뒤, 흥미를 가지고 포장지掛け紙를 중심으로 에키벤의 역사를 설명하는 책 두 권을 구입하여 내리 읽은 적이 있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 역사 깊은 에키벤에 대한 관심, 그리고 차창 밖을 바라보며 에키벤을 먹는 경험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커져갔습니다. 마침 직접 체험해볼 기회가 마련된 것입니다.

 

아직도 재래선은 건재합니다만, 일본에서는 신칸센의 보급과 함께 에키벤 문화의 본연의 역할은 다소 형해화形骸化한 감이 있습니다. 뿌연 매연을 내뿜으며 달리는 열차가 환승이나 연료 보급을 위해 잠시 머무는 정차역에서 급하게 에키벤을 구입해와 끼니를 해결해야 했던 고된 여행길은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옛날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물론 기차 안에서 끼니를 때워야 하는 바쁜 비즈니스맨을 위해, 그리고 설레는 여행길의 또 하나의 즐거움으로서 에키벤 문화는 의연히 일본의 기차 여행 문화의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제가 에키벤을 이야기할 때 항상 강조하는 말이 있습니다. 에키벤은 결코 미식이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원래는 길고 따분한 기차 여행의 제한된 조건에서 단순히 끼니를 해결하기 위한 용도로 이 세상에 등장한 에키벤이라는 가공식품은, 완성된 요리를 일회용 용기에 담아 소비하고 버리는 즉석식품에 불과한 것입니다. 아무리 식품공학이 발전했댄들, 차갑게 식어 굳어버린 탓에 푸석거리는 즉석식품을 도저히 미식이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에키벤을 먹는 행위는 과거 증기기관 열차를 타고 여행하던 시절의 문화를 체험한다는 측면에 저는 가치를 두고 있습니다.

오후나켄 샌드위치

 

서론은 이 정도로 하고, 이번에 제가 구입한 에키벤은 오후나켄大船軒의 ‘샌드위치サンドウヰッチ’입니다. 값은 구입한 시점에서 580엔입니다. 제가 번역한 《철도창가》 도카이도편 가사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六  橫須賀ゆきは乘替と 呼ばれておるゝ大船の
   つぎは鎌倉鶴が岡 源氏の古跡や尋ね見ん
   요코스카 가려거든 환승하라고 하여 내리는 오후나의
   다음은 가마쿠라 쓰루가오카 겐지의 고적을 둘러보세

 

가마쿠라 햄을 사용했다는 점을 어필하는 이 에키벤은 일본에서 처음으로 판매된 샌드위치 에키벤입니다. 당시로서는 도내의 고급 양식점에서나 볼 수 있었던 샌드위치를 에키벤에 도입하여, 일본 내에서 샌드위치를 보급하는 효과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에키벤을 제조·판매하는 오후나켄의 상호에서 알 수 있듯이, 메이지 32년(1899년)에 도카이도 본선 오후나역에서 판매되기 시작한 것이 그 기원입니다. 현재는 오후나역 외의 다른 역에서도 판매되고 있으며, 저는 저명한 건축가인 다쓰노 긴고辰野金吾가 설계한 것으로 유명한 도쿄역에서 구입했습니다. 상표에 들어간 ヰ ‹wi›라는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옛 가나 표기법이 19세기부터 판매되어온 이 에키벤의 오랜 역사를 보여줍니다.

 

단촐한 구성

 

구성은 단촐합니다. 성인 남성 기준 서너 입 정도 크기의 샌드위치 여섯 조각이 차곡차곡 담겨 있습니다. 본리스 햄 샌드위치 네 조각과 치즈 샌드위치 두 조각 구성입니다. 가마쿠라 햄은 요코하마의 외국인 거류지 주민을 상대로 식품을 판매하던 한 영국인이 가마쿠라에 목장을 세워서 햄, 베이컨, 버터 등을 생산한 것이 시초입니다. 요코하마의 외국인 거류지에 관해서는 제가 만든 이 영상에 자세합니다. 당시 서양음식의 보급이 저조하던 일본 사회에서 이처럼 에키벤으로 가공되어 간편하게 먹을 수 있었던 오후나켄의 샌드위치는 가히 획기적인 것이었습니다. 1899년부터 변함없는 이 샌드위치는, 첫 발매로부터 125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바라보면 투박하기만 합니다. 특히 녹색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햄의 두께는 편의점 샌드위치보다 두꺼워서 탄력있는 씹는 맛이 살아 있습니다. 과연 포장지에서 가마쿠라 햄을 강조할 만하다고 느꼈습니다. 치즈 샌드위치는 치즈의 살짝 시큼한 풍미와 느끼함이 공존하여 두 조각만 들어간 까닭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성비와 전반적인 맛의 균형을 고려하면 역시 편의점 샌드위치가 더 낫습니다. 125년 동안 레시피가 (적어도 큰 틀에서는) 변하지 않은 탓일까요? 차창 밖을 바라보며 한 조각씩 집어 먹기에는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쓰레기가 많이 나오지 않고 냄새가 풍기지 않는다는 점은 메리트입니다.

 

이 날 아쉽게도 날이 흐려서 후지산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미야코섬에 갈 때도 구름이 자욱하여 보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대놓고 후지산 근처를 지나갔는데도 보지 못했습니다. 도대체 언제쯤 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행선지에서 도쿄역으로 돌아오는 편에서도 에키벤을 구입하여 먹었습니다. 이 날 먹은 에키벤은 다음 기사에서 다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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