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게 먹는 렁차이冷菜의 일종인 량피凉皮는 내게 있어서는 추억의 샤오츠小吃로, 중학생 시절에 마트에서 저렴하게 파는 산시陝西식 량피를 사와 먹고는 완전히 빠져들게 되었다. 넉넉하게 두른 즈마장芝麻醬의 고소한 감미, 진강향초鎭江香醋의 고급진 산미, 무엇보다 윤택하며 탱글거리는 투명질의 량피 면(중국에서는 통상 량피를 면이라고 부르지 않지만 이 글에서는 이렇게 칭하기로 해둔다)의 식감은 아주 재미있다. 잘 알 수 없는 향신료로 우려낸 마늘 물과 고추기름의 복합적인 향미는 화룡점정이다. 해당 마트가 문을 닫으면서 한동안 량피를 먹지 못하다가,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산시 량피를 구입해먹기도 하였고, 배달 음식이 태동하던 시기에 비로소 전문점에서 판매하는 량피를 다시금 접하게 되었다.
중국 요리 매니아로서 정석적인 마파두부는 물론이요, 뱡뱡면이라는 이칭으로 유명한 유포몐油潑面, 뽕나무버섯榛蘑이 향기로운 샤오지둔모구小雞燉蘑菇, 기름이 속을 뎁혀주는 마오쉐왕毛血旺 등 국내에는 그다지 소개되지 않은 희한한 요리들도 많이 만들어 먹어보았는데, 그러나 오히려 조리법이 간단하며 개인적인 컴포트 푸드인 량피는 여태 내 손으로 요리해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량피가 가볍게 즐기는 샤오츠이지만, 가정집에서 만들려고 하자면 보기보다 번거로움이 수반되기 때문이리라. 기성품을 사용할 수 없어 면을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점은 유포몐과 같지만, 가정집에서 만들고자 한다면 량피의 면은 유포몐보다 훨씬 번거롭다.
량피를 만드는 방법 자체는 간단하지만, 밀가루 반죽으로부터 적절한 농도로 전분을 분리해서 얇게 핀 뒤 찌는 과정은 시간과 손이 많이 든다. 우선 밀가루에 물을 더해 고형 반죽으로 만든 뒤 다시 맑은 물에 그 반죽을 씻어내는 과정을 반복해야 하는데, 이로부터 분리되어 나온 농축된 밀가루 전분 물과 몐진麵筋이라고 불리는 푸석거리는 글루텐 덩어리가 얻어진다. 전분 물은 적절한 농도를 맞추기 위해 다시 다섯 시간 정도 가만히 두어 침전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반죽을 하염없이 씻고 기다리는 수고를 들여서까지 식량을 최대한 유효 활용하고자 했던 과거와 달리, 반대로 영양 과잉 시대에 살아가며 곧 시험 기간이 다가오므로 한정된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야 하는 나는 이 짓을 벌일 여유가 없다. 나는 반죽을 씻지 않아 몐진을 추출하지 않는 방식을 취했다. 따라서 이번에 내가 만든 것은 엄밀히 말하면 량피가 아니라 몐피麵皮이다.
량피이건 몐피이건 만들기로 마음을 먹은 이상, 재료와 조리도구를 갖춰야 하므로 무턱대고 근처 마트를 향했다. 중력분 밀가루, 향초香醋, 유라자오油辣椒, 하이디라오 훠궈 땅콩소스, 오이를 구입했다. 자취생으로서 레시피에 제시된 재료를 정확하게 구입하기보다는, 예컨대 즈마장 한 병을 구입하면 못 먹고 버릴 것이 뻔하므로 훠궈용 땅콩소스를 대용으로 구입하는 식의 적당한 타협점을 찾는 방식을 채택한다. 조리 과정에서 중탕을 해야 하는데 집에는 마땅한 용기가 없었다. 다이소에서 직경 26cm의 케이크 틀을 발견하여 이것을 활용하기로 하였다. 가격은 200엔. 그 외에 식용유를 펴바르기 위한 용도로 100엔 짜리 요리용 붓을 구입했다.
조리
집에 계량 도구가 없으므로 요리는 눈대중으로 하고 있다. 그릇에 밀가루를 쏟아붓고 소금을 조금 탄 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뭉치지 않도록 젓가락으로 저어주었다. 처음 해보는 작업이라 농도를 어느 정도로 맞춰야 하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는데, YouTube의 레시피 영상에 보이는 점도와 얼추 비슷하게끔 물을 넣고 한 시간 방치했다. 한 시간 새에 점도가 올라갔기 때문에 다시 생수를 조금 추가해야 했다.
냄비에 물을 넣고 끓인 뒤, 케이크 틀에 식용유를 고루 바르고 밀가루 물을 얇게 부었넣었다. 밀가루 물이 틀의 바닥 면을 간신히 가릴 정도로만 넣었는데, 생각해보면 두께 조절은 용량이 아니라 농도를 통해 조절해야 하는 문제이다. 그 후, 케이크 틀을 끓는 물 위에 띄우고 뚜껑을 덮어 중탕하며 찐다. 전분 물이 익어서 변색되면 냄비에서 꺼내서 찬 물 위에 띄워 식힌 뒤 틀에서 떼어낸다. 이 과정을 전분 물을 다 쓸 때까지 반복한다. 총 네 장의 량피를 얻었다.
여기까지 왔으면 사실상 완성된 것이나 다름없다. 용기에 향초 한 큰술을 넣고 완성된 량피를 반으로 접은 뒤 적당한 너비로 썰어서 담았다. 오이도 채를 썰어 넣었다. 글루텐을 분리하여 순수한 전분만을 중탕했다면 면의 색이 더욱 희고 투명하게 나왔을 것이다. 또한 정석적인 량피는 분리된 글루텐, 즉 몐진을 주사위 모양으로 토막내서 곁들여 먹는다. 몐진은 푸석거리지만 씹는 맛이 있고, 구멍이 송송 뚫려 있어 양념을 잘 흡수하기에 씹으면 국물이 터져나온다. 그러나 몐진을 얻기 위해서는 장시간의 침전 과정을 요한다⋯⋯.
이 위에 소금과 다진마늘을 물에 탄 것(?), 즈마장 대용으로 구입한 하이디라오 훠궈 땅콩 소스를 한 큰술, 유라자오 한 큰술을 얹는다. 사실 마늘 물은 어떻게 만드는 것인지 잘 모른다. 학창 시절에 마트에서 보았던 조리 과정에서 들어가는 마늘 물은 상당히 탁했는데, 레시피에 따라 팔각이나 오향을 우린 물을 쓰기도 한다. 아무튼 내가 먹기에는 어설프게 간략화된 레시피로 충분하다.
완성
그 때 그 맛과는 미묘하게 다르지만 거의 흡사하므로 만족스러운 결과이다. 한 그릇에 량피 두 장씩을 사용하여 총 두 그릇을 먹었다. 한 끼 식사로 족하였다. 참고로 저 원통형 입자로 된 소금은 이전에 언급하였던 유키시오 소금이다. 개선이 필요한 부분으로 채소가 부족하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고수나 콩나물을 더해도 좋았겠지만 요즘 야채류 시세가 그리 만만하지 않다.
몐피의 경우 시중에 인스턴트 식품으로 유통되는데 먹어본바 별로였다. 유사 식품으로 찰기는 없으나 투명도가 높은 량펀凉粉이라는 것이 있으며, 이것은 아예 물에 순수한 전분 가루를 타는 방식으로 조리한다. 묵처럼 굳어진 전분을 량펀다오凉粉刀라고 불리는 전용 칼로 긁어서 면을 뽑는데(마찬가지로 중국에서는 이것을 면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내가 거주 중인 지역에서는 쉽사리 구할 수 없다. 도구만 수중에 들어온다면 다음에는 량펀을 요리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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