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에 일본한자학회JSCCC에 찬조회원으로 가입하고 벌써 두 해를 맞이하였다. 그동안 찬조회원에서 정회원이 되었는가 하면, 이곳에서 발행하는 학회지와 회보지를 통해 많은 양서良書와도 만날 수 있었다. 얼마 전에 도쿄외국어대학(TUFS)에서 개최된 학술대회에 참여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회비를 납후할 계획이므로 내년 학술대회에는 꼭 참여할 작정이다.
일본한자학회
JSCCC는 2018년에 설립된 신생 학회로, 연구자와 취미가의 교류가 활발한 회풍이 특징이다. 한자 문화가 사장되어가는 한국과 달리, 일본에는 트위터를 중심으로 한자와 관련된 폭넓은 주제에 깊은 흥미를 가지고 활동하는 취미가들이 굉장히 많다. 이들 상당수가 지명·인명에 쓰이는 희귀 한자와 일본의 역사적인 국자國字 등을 주요 관심분야로 삼고 있는데, 조선시대 이래 국자의 대부분이 주자 5원소적 부수 첨가로 형성된 인명용자인 한국의 상황과 달리, 일본은 독자적인 조자造字가 활발히 이루어졌으며 근세에는 언어유희가 유행하면서 말장난에 기반한 글자나 고유어 표기를 위한 재치있는 글자들이 대량으로 발생했고, 또 지명과 방언에 쓰이는 특이한 글자가 지금도 무수히 발굴되고 있다.
일본 어문 역사의 이러한 특이성 탓에, 연구자들에 의해 아직 취급된 적 없는 흥미로운 용례들을 拾萬字鏡@JUMANJIKYO와 같은 열성 취미가들이 고문서를 하나하나 뒤져내 발굴하여 소셜 미디어를 통해 공유하는 ‘행동파 집단지성’ 네트워크가 일본 한자학 커뮤니티 내에서 형성되었다. 웹의 찌라시 정보를 퍼다 날라 쓰레기 폐품만을 재생산하기 바쁜 모 위키 사이트의 ‘집단지성’이라고 주장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아무튼, 열정적인 취미가들의 활동을 바탕으로 연구자들은 새로운 발견을 분석하여 연구 성과로 공개하기도 하는데, JSCCC는 이러한 관계의 호혜성을 중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금년도 학술대회에서 유명한 한자 취미가인 拾萬字鏡 씨가 본인의 연구를 직접 구두 발표했다는 탈권위적인 분위기도 강조하고 싶다.
연 5천 엔의 회비를 납부하는 정회원은 JSCCC가 펴내는 두 종류의 정기 간행물을 모두 제공받을 수 있다. 하나는 ‘학회지’라고 불리는 《일본한자학회보日本漢字學會報》 논문집이며 연 1회 간행된다. 다른 하나는 찬조회원에게도 제공되는 ‘회보지’로, 그 이름도 연구가와 취미가를 이어주는 창구의 취지를 살린 《학회통신 한자지창學會通信 漢字之窓》이 강희자전체로 되어 있다. 연 2회 간행되는 회보지는 소속 연구자들이 참여한 좌담회를 대화 형식으로 문자화한 지성적인 대화를 시작으로, 각종 기사와 칼럼, 인터뷰, 뉴스, 서평, 신간 정보 등 알찬 구성으로 되어 있다.
내가 한자에 흥미를 갖게 된 계기
먼저 일본의 한자 연구사를 주제로 形·音·義를 각각 대표하는 연구자 세 명을 중심으로 진행된 좌담회 기록을 읽는데, 익숙한 이름들이 하나둘 보였다. 일본 한자의 자체字體 연구로 저명한 기쿠치 게이타菊地恵太가 출석자의 한 명으로 등장하고, 문책文責 재기자는 한자와 관련된 유용한 웹사이트를 운영하여 이전부터 알고 있던 엔만지 지로円満字二郎이다. 기쿠치 게이타의 경우, 그의 연구서 《일본약자체사논고日本略字体史論考》(2021)를 흥미롭게 읽은 적이 있어서 특히 반가웠다.
회비를 납부한 회원에게만 제공되는 글이다보니 내용에 관한 자세한 언급은 삼가겠으나, 좌담회는 한자에 흥미를 갖게 된 계기와 영향을 받은 연구서 및 논문을 묻는 것으로 시작한다. 비록 나는 한자에 다소의 관심을 가지고 있을 뿐인 일반인이지만 모방하여 이들 물음에 대답해보기로 한다.
내가 한자에 흥미를 갖게 된 계기가 또렷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상기 좌담회에서도 세 명 중 둘은 최초의 계기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한 것과 같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이미 한자라는 거대한 미림謎林에 빠져들어, 차츰 길을 더듬어 문경問徑해나간 과정에 대해서는 하나같이 또렷하고 강렬한 기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라는 개인의 범위를 넘어서서 조망하자면, 가장 큰 계기는 역시 2000년대 이래 한자교육을 조장하던 사회적 분위기가 가장 크지 않을까.
초등학교 시절, 담임 교사의 지도로 아침 자습 시간 때 한자 깜지를 적곤 했다. 한자 교육은 의무 과정이 아니었기 때문에, 반마다 또는 학년마다 아침 자습 때 한자 노트를 적는 학급이 있으면 그렇지 않은 학급도 많았다. 초등학교 3학년 시절에는 일본에서 살다가 전학온 동급생에게 가나 문자를 열심히 배운 적이 있었는데, 이를 흡족스럽게 지켜본 당시 담임 교사였던 박 모 선생은 부탁드리지도 않은 두꺼운 일본어 기초 입문서를 복사하여 내게 건네주셨다. 담임 선생과 동급생에게 다대한 호의와 도움을 받았던 3학년 시절은 지금 돌이켜 생각해봐도 고맙고 귀중한 기억들로 가득하며, 일본어와 한자 실력이 가파르게 올랐던 시기이기도 하다. 비슷한 시기에 한자교육 열풍이 불면서, 당시 초등학생들이 모여들 법한 어느 곳에든 《마법천자문》과 같은 한자교육 만화가 비치되어 있었고, 마찬가지로 한자에 빠져들었던 동급생들과 A4 용지 한 장을 판상에 펼쳐놓고 한자 대결을 벌이곤 했었다. 이 때 많은 학생들이 이미 어문회 기준 5급 수준의 한자는 기본으로 읽고 쓸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비록 잘못이 많긴 했더라도.
영향을 준 책
기쿠치 준교수와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나 역시 한자의 자체·자형에 주로 관심을 가졌었다. 성인이 된 내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한자 관련 서적은 아쓰지 데쓰지阿辻哲次의 《전후 일본 한자사戦後日本漢字史》(2020)이다. 지쿠마학예문고ちくま学芸文庫에서 나온 대중서로, 자형字形·자체字體·서체書體의 구분을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올 4월에 국역본이 출간된 것을 뒤늦게 확인했다. 이 책은 일본의 한자폐지론을 시작으로, 당용한자 제정, 상용한자 제정, JIS 표준 등 전후 일본에서 진행된 ‘일본 한자의 표준’을 정하는 과정을 풀어나간다. 이를 읽고 필연적으로 대한민국의 한자 정책에 대해서도 궁금증을 품게 되었고, 결국 내가 한국의 제정 약자에 관해 조사하게 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된 책이기도 하다.
이러한 경험을 계기로, 박물관에서 옛날 신문을 마이크로필름으로 돌려보거나, 헌책방에서 한국어문회編 《한국어문교육연구회 三十年史 1969~1999》, 남광우著 《現代國語國字의 諸問題》, 《월간 조선》 1984년 1월호 등의 문헌을 수집하는 등 대한민국의 제정 약자를 조사하던 와중에, 트위터에서 솔귀 @solgwi라는 한자 취미가를 만나 크나큰 도움을 받기도 하였다. 그는 글리프위키에 542자의 제1차 문교부 약자 시안을 목록화해두었는데, 비록 신문 아카이브의 저화질 이미지를 보고 작업한 것이라 다소의 오류가 존재했지만, 그의 노력을 바탕으로 작업의 수고를 크게 덜 수 있었다. 그는 닉네임이 주는 인상과 달리, 아니나 다를까 한국인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내가 만나본 절대다수의 한국인은 이런 주제에 흥미가 없었고, 조언과 격려를 해주기는커녕 심지어 하찮게 여기기 일쑤였으며, 드물게 관심을 드러낸다고 하더라도 직접 문헌을 조사하여 문서화하고 공개된 플랫폼에 실어 ‘기여’하는 취미가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대다수는 관심도 주지 않을 주제이지만, 내 책 부록에 이들 성과의 일부를 실어 한국어 정보 생산에 기여할 수 있었던 것을 나는 긍지로 여긴다.
일본 교열기자의 한자 삼매
또 하나 흥미롭게 읽은 기사는 니혼게이자이신문 소속 교열기자인 고바야시 하지메小林肇 씨가 기고한 것인데, 지금껏 교열기자로서 한자에 관하여 탐구해온 족적을 회고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사의 일본어 폰트를 기존 비트맵 형식에서 벡터 아웃라인 형식으로 이행할 때, 당시 유일하게 20대 직원으로서 표외자 및 그 확장 신자체와 관련된 社內 논의에 참여했던 이야기, 일찍 출근하여 업무에 들어가기 전 매일 삼십 분에서 한 시간 동안 신문에 사용된 外字(JIS 제1수준·제2수준 한자에 포함되지 않는 글자를 말함)를 조사하였던 즐거움, 부서 이전이 되어 한자와 관련된 업무는 더 이상 취급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만남을 통해 학회 발표와 몇 편의 논문을 게재했던 이야기 등⋯⋯. 그의 끈질긴 탐구욕은 모범적인 저널리즘의 또다른 형태라고 생각했다.
그가 수집한 막대한 外字의 신문 용례는 인명용 한자가 주를 이뤘는데, 그렇게 수집된 벽자는 해당 글자를 이름으로 가진 사람의 거주지 또한 메타데이터로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은 방대한 일본어 방언 한자의 지역별 통계 데이터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간의 노고로 얻어진 귀중한 자료를 활용하여, 고바야시는 일본 한자학의 대가인 사사하라 히로유키笹原宏之 교수의 제안으로 방언 한자에 관한 계량적 연구 논문을 제출하기까지 하였다.
한국은 어떤가
한국에서도 이처럼 언론사의 교열기자 주도로 어문 연구, 한자 연구가 활발히 진행된 적이 있었다. 1980년대의 한국어문회 약자안은 실은 당시 조선일보의 서강화徐康和 교열부장이 담론의 계기를 마련하여 적극적으로 관여하였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기자는 이제 정부 공보물에 적힌 ‘非아파트’를 ‘北아파트’로 옮겨 오보하는, 그러니까 ‘우라까이’조차 제대로 못하는 문맹 집단이 되고 말았다.
지금은 나의 한자에 대한 흥미는 살짝 식었으나, 학창 시절부터 일관되게 國漢混用, 아니면 최소한 한자교육의 의무화를 주장했던 자로서 이 나라의 문맹 퇴치에 기여하고자 하는 마음은 조금도 변함없다. 국내의 상황은 실로 열악하여, JSCCC와 같이 연구자와 취미가를 이어주는 창구가 나타나기를 바라기는커녕, 배외적인 한글 숭배 풍토를 고쳐 언중을 계몽하는 첫걸음조차도 너무나 버겁게 느껴지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