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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고/다도

말차를 음미하고자 녹차(센차·교쿠로)의 세계로

데키테키 및 다마호마레

 

나는 꼬맹이 시절부터 남들이 쓰다고 기피하던 ‘말차맛’ 디저트(물론 설탕이 엄청나게 들어가지만 어린 아이 기준에서는 씁쓸하다고 느낄만 하다)를 선호했던 탓에 한동안 내가 ‘말차’에 대해 충분히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내가 접해온 말차라는 것은, 그 향미를 香과 味로 나누었을 때 전자에만 해당하는 반쪽짜리에 불과하였다. 그것은 그동안 말차를 茶로서의 본연의 맛으로 대할 기회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게 언젠가 지인의 소개로 마루큐 고야마엔丸久小山園(이하, 고야마엔) 말차를 마셔볼 기회가 주어졌는데, 나는 ‘말차맛’ 라떼와 같은 그런 대중적인 말차 향을 좋아했기 때문에 정석적인 말차 역시 쉽게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착각하였다. 당시에 마신 운카쿠雲鶴 말차는 내가 지금껏 말차라는 카테고리에 추구하던 바와는 전혀 일탈된 완전히 별개의 속성을 지닌 음료였다. 또한 일본 차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부족한 탓에, 당시 마셨던 고야마엔의 운카쿠, 나아가 일본 다도 문화 전반에 대한 내 내면에서의 평가는 어딘가 모호하게 남아 있다. 지금 돌이켜보면, 여태껏 香으로만 알고 있던 말차의 味를 비로소 접하였을 때 도저히 적절한 비교 대상을 찾지 못하였으므로, 말차라는 미지의 숲에 지도와 나침반 하나 없이 홀로 놓여 헤매이는 처지가 된 것이었다.

말차 음미를 궁구코자

내 안에서 개운치 못하게 남아 있는 말차를 진정으로 이해해보기 위해, 최종적으로는 말차를 어렵게 대하지 않고 순전한 기호로서 즐길 수 있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 우선 일본 녹차에 대한 경험의 외연을 넓혀나가기로 하였다. 여태까지 마셔본 일본 차라고 해봤자, 직접 캔을 구입해서 우려본 운카쿠와(그마저 다 마시지 않았다), 작년에 고야마엔 본사 공장을 방문했을 때 제공받은 긴린金輪 한 사발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다만 전문가가 우려준 긴린이 그보다 품질이 더 좋은 운카쿠보다 맛있게 느껴졌던 건, 아무래도 내 말차 우리는 요령이 한심했기 때문일 것이다(거품 내기가 관건이다). 아무튼, 이번에는 말차 말고 센차, 교쿠로와 같이 일본인들이 보다 캐주얼하게 즐기는 녹차를 마셔보기로 하였다. 고야마엔의 주력 상품은 말차이지만, 센차, 교쿠로 등의 녹차도 다양하게 생산한다. 기왕이면 같은 가게에서 생산하는 차로 비교해보고 싶었다.

 

이번에 고른 차는 센차 ‘데키테키的的’와 교쿠로 ‘다마호마레玉誉’이다. 공식으로 운영하는 온라인 숍에서 구매했다. 작년에 고야마엔의 본사 공장을 방문하여 회원등록을 하고 포인트 적립도 하였으나, 점포 별로 관리되는 시스템인지라 서로 연동되지 않는 바람에 다시 교토에 방문하지 않는 한 무용지물이다. 소소한 팁을 공유하자면, 공식 사이트에서 5,000엔 이상 구입 시 배송비가 면제되어 상품의 경감세율 8%만 부가세로 지불하면 된다. 반면 배송비가 붙는 경우에는 상품의 경감세율에 더해 배송비의 소비세 10%도 추가되기 때문에 낭비가 크다. 돈을 아끼겠다고 어중간한 가격대의 차를 구입하면 오히려 배송비와 소비세가 더 나오는 수가 있어 이를 주의해야 한다.

마루큐 고야마엔의 연혁

고야마엔의 역사는 (적어도 한국인의 감각으로 보면) 유구하다. 겐로쿠元祿 연간(1688–1704)에 현재의 일본 교토부 우지시에서 창업한 고야마 규지로가 초대 원주園主이다. 근세 일본 국학과 문학이 흥성기를 맞이하고, 마흔일곱 낭사 이야기로 유명한 아코 사건이 일어난 시기이기도 하다. 1964년에는 일본차 제조 및 판매 업체로서 회사체로 설립되었으며, 현재는 자본금 4,500만엔의 주식회사가 되었다.

 

일본의 찻가게 상호에는 園이 붙는 경우가 많다. 원래는 차 농원에서 차를 가공한 뒤 판매를 겸하는 일이 흔하여 이러한 작명 방식이 고착화된 것인데, 때문에 지금은 따로 농원을 소유하지 않아도 무슨 園이니 하는 찻가게를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마루큐 고야마엔도 한자로 적으면 丸久小山園으로서 園이 붙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곳은 실제로 차 농원을 운영하면서 원조園祖인 고야마 규지로가 재배와 제조 공정을 돌본 것이 그 시원이다. 여기서 마루큐丸久는 일본 특유의 상표 호칭인 야고屋号로, 마루큐 고야마엔의 상표가 둥근 원 안에 久가 들어간 꼴이기 때문에 이렇게 부르는 것이다. 일본 사회의 전통적인 야고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글을 적겠다.

우지시 소재 본사 공장 방문 당시에 촬영한 먀루큐 고야마엔 상호

 

창업으로부터 300년 이상 지난 同族경영 기업이 일본에는 상당히 흔하다. 특히 교토쯤 되면 길거리에서 아무 가게를 들어가도 수백 년의 가업승계로 이어져온 노포인 경우가 많다. 본래 재배와 가공만 담당하였다가, 원조로부터 네 세대 뒤에는 차를 직접 판매하기에 이르렀다. 메이지 연간에 들어서자 제8대 원주가 ‘품질 본위의 차 제조’를 기업 신조로 삼아 지금까지 이어진다. 현재는 제11대 원주인 고야마 모토야小山元也가 2021년 9월 1일부로 대표이사직에 취임하였다.

 

고야마엔은 일본의 전국 차 품평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왔다. 1~3위를 독점하는 경우도 종종 있으며, 최근에는 2020년에 전국 차 품평회에서 1위를 하여 농림수산대신상을 수상했다.

출품 센차 ‘데키테키’

솔잎처럼 가느다란 데키테키의 찻잎

 

고야마엔에서 제조·판매하는 센차는 총 일곱 종류로, 데키테키的的, 운조雲上, 슈에이珠江, 호라이蓬萊, 고토미도리古都緑, 다카라기宝樹, 시가라키紫香楽 순으로 값이 비싸다. 이 중 데키테키와 운조는 전국 차 품평회에 출품한 차로, 그 품질과 향미는 각별하다. 이번에 내가 주문한 것도 데키테키 40g 캔(3,856円)이다. 물론 고야마엔의 주력 상품은 어디까지나 말차이기 때문에, 센차 중에서 최상위 상품이라 할지라도 말차에 비교하면 저렴한 편이다. 예전에 마셔본 운카쿠 40g 캔(4,104円)은 출품 상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데키테키보다 값이 나간다. 이는 추측건대, 말차의 재배 및 선별 기준이 더욱 까다롭고 제조 공정이 더 복잡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말차는 가루 차이기 때문에 입자가 곱다보니 표면적이 넓어, 엽차에 비해 더 적은 양으로도 차를 우릴 수 있겠다.

 

캔을 열자마자, 엽차 특유의 텁텁하거나 쿰쿰하다고 할 만한 군더더기 내음 없이 실로 녹차의 가장 이상적인 장점만을 모아놓은 듯한 달콤한 향취가 풍겨왔다. 우리고 나면 전혀 단 맛이 없지만, 이상하게도 향에서만큼은 농축된 단 내음이 풍겨오니 희한한 일이다. 센차 역시 향과 맛은 확연히 구분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솔잎처럼 정갈하게 잘 건조된 찻잎은 鴨頭綠(야투루빛을 띄어 보기에 아름답다. 이 오묘한 빛을 翠色이라고 표현할지 고민하였다가, 빛에 반사되어 나타나는 그 반지르르한 질감 탓에 흡사 청둥오리 대가리를 연상시키기에, 古語인 야투루빛(문헌에 따라 야토로, 야토록, 야투로 등)이라는 단어가 뇌리에 박혀버렸다. 데키테키의 찻잎 색을 한국어로 표현하기에 이보다 적절한 용어는 없으리라. 바늘처럼 가느다란 찻잎은 차나무의 싹이 어릴 때 수확해야만 나타나는 고급 차의 특징이다.

 

공식 소개에 따르면, 센차는 태양 밑에서 새싹을 틔우는 대표적인 녹차이며, 산뜻한 향기와 적당하게 떫은 맛이 특징이라고 한다. 총 40g이니 열 번 정도 우릴 수 있으리라. 앞으로의 경험이 기대된다.

교쿠로 ‘다마호마레’

다마호마레의 찻잎

 

고야마엔에서 제조·판매하는 센차는 총 일곱 종류로, 지토세노호마레千歳の誉, 히사호마레久誉, 다마호마레玉誉, 조슈趙洲, 스이테키翠滴, 시운紫雲, 덴쇼天祥, 미즈야마瑞山 순으로 값이 비싸다. 이 중 지토세노호마레와 히사호마레는 품평회에 출품된 차인데, 이번에 구입한 것은 다마호마레이다. 사실 이런 전통적인 기호식품은 가격의 차이만큼 경험의 차이를 가져다주지는 않기 때문에, 문외한일수록 값싼 상품으로 입문하는 것이 현명하겠으나, 3세기 넘게 이어져온 전통 녹차를 열 번 정도 우림에 있어 3천엔 남짓은 내게 적정가로 보였다. 고야마엔을 기준으로 교쿠로 역시 말차에 비하면 여전히 저렴한 편이다.

 

녹차라는 카테고리에서만 보면 본래 교쿠로를 센차보다 고급으로 친다. 센차와 교쿠로의 재배 방식은 ‘차양’에서 차이가 두드러진다. 센차는 기본적으로 일광재배를 하지만, 교쿠로는 새싹이 돋으면 곧바로 차양막을 씌워서 피복재배를 한다. 수확 전 3주 간 햇빛을 차단함으로써 숙성된 단맛이 올라온다고 한다. 말차 역시 피복재배를 한다.

 

정작 캔을 열었을 때, 다마호마레의 향기는 데키테키에 비해 군더더기 냄새가 조금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시골에서 무청을 말리면 나는 무언가 텁텁한 냄새가 희미하게 곁들여져 있다. 어쩐지 찻잎의 형태도 솔잎같은 데키테키와 달리 쪼그라든 잎사귀가 무성하다. 하지만 맛에 있어서는 일반적으로 센차가 떫은맛, 교쿠로가 단맛이 비교적 강하다고 하므로, 우려보기 전까지 평가를 서두를 수는 없겠다. 그러나 적어도 향기에 있어서는 데키테키의 향이 수일하며, 아마도 재배 방식의 차이와 무관하게 출품 상품으로서 보다 품질이 높은 찻잎을 사용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일본 다도의 세계

이제 말차를 비롯한 일본 녹차의 주된 종류를 모두 경험해보게 되면서, 피차 비교의 기준점을 마련하였다. 언어화하기 어려운 녹차의 향미를 음미하면서 다도의 심오한 세계를 궁구해나갈 것이다.

 

일본 다도의 중심에 위치하는 인물은 16세기에 와비차侘茶 양식을 정립하여 일본에서 다성茶聖으로 추앙되는 센노 리큐千利休이다. 그의 후손들이 개창한 산센케三千家는 모두 말차를 위주로 차를 즐긴다. 말차와 녹차는 모두 씁쓸한 맛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예로부터 단맛이 강한 와가시和菓子를 곁들어 먹었다. 오모테센케의 도키와만주常盤饅頭, 우라센케의 하나비라모치花びら餅(간토와 간사이가 다름), 무샤코지센케의 미야코노하루都の春처럼 산센케의 유파마다 하쓰가마初釜(신춘을 맞이하고 여는 첫 다회) 때 먹는 과자가 정해져 있다. 이처럼 하나의 문화가 법도를 갖추어 다양화해가는 것은 멋진 일이다. 한국의 다례茶禮, 중국의 다예茶藝에 대해서도 호기심이 생겼다.

 

흑니 규스에 담은 데키테키 찻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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