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무위키로의 전재를 단호히 사절


거란어

(11)
거란어의 한글 표기안 나는 오래 전부터 지인들에게, 대한민국에서 종교화된 배외적인 어문 내셔널리즘의 중심에는 괴력난신의 신화를 거느린 거대한 ‘한글’ 우상이 신성불가침의 영역에 존재하고 있다는 식으로 떠들어왔는데, 얼마 전에 지금껏 이 해괴한 종교의 독실한 신앙자인 줄로 알았던 로스 킹Ross King 교수가 파렴치한 배교적인 발언을 하여 나로서는 몹시 흡족스러운 구도가 펼쳐졌다. 이제 그는 한글 신화 속에서 敵한글로 편입된 것이다. 나 역시 어쨌거나 평균적인 한국인으로서 한글에 대한 다소간의 애착은 가지고 있으나, 우매한 한글 숭배를 바라보는 심정은 또 다른 것이다. 여기서 한글 신화의 부당성과 국어·국자 문제를 거듭 거론하는 것도 미련하니(가볍게 도발하는 이 수준이 적정선이다), 본지에 마땅하게 거란어 고유명을 한글로 표..
거란소자 자소 번호 317번의 음가 추정 짧은 글이다. 지금까지 거란소자의 317번 자소인 𘯃의 음가는 명확하게 알려진바 없었다. 거란어학의 바이블이라고 칭해지는 『거란소자재연구契丹小字再硏究』(2017)의 소자 목록에서 재구음이 제시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음가 추정의 고증도 제시되지 않았다. 현시점에서 오타케 마사미大竹昌巳의 최신 논문인 「遼寧清河門西山遼墓出土漢文・契丹文墓誌訳注」(2024)에서도 추정 음가가 미상인 채로 다루어졌다. 나는 거란대자 자료를 근거로 𘯃의 음가를 ‹tad›로 추정하고자 하는데, 이는 거란어 서수사의 거란대자 표기를 근거로 한다. 거란어 서수사 다섯, 즉 “다섯 째”는 거란소자 자료를 통해 남성 단수형 𘰺𘮇𘯶𘭞 tadoor, 여성 단수형 𘰺𘮇𘯶𘯎 tadooň이 익히 알려져 있다. 이 중 남성 단수형의 ..
신태현(1958) 〈거란문자고〉 《사조》 1 (2): 251–255 국내 거란어 연구의 선구자인 신태현辛兌鉉이 월간 《사조思潮》 1958년 창간 2호에 기고한 논문을 전자화한 것이다. 硏究發表論文 《史學篇》契丹文字考東洋의 北方民族중에서 처음으로 자기나라 固有의 문자를 가졌던것은 突厥과 回紇이었다。그후에 北方민족 사이에는 이것에 자극을 받아서 국민적 自覺이 현저하게 나타나게 되어 漢字에 의존하지않고、자기의 국어를 記寫하기 위해서 독특한 文字를 만들었던 것이니、이것은 주목할만한 사실이다。즉 契丹文字라던지、女眞문자라던지、蒙古문자、滿洲문자등은 이러한 民族的자각에서 생긴 文字인 것이다。여기서는 그중에서 비교적 오랜 契丹文字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한다。 契丹文字의 제작에 대해서는 遼史本紀에 遼의 太祖가 神冊五년에 처음으로 契丹文字를 지어서 詔書를 내려서 이를 頒行시켰다고 하였다。..
거란대자 자소의 표음 유형에 따른 분류 Jerry You 씨가 운영하는 고금문자집성古今文字集成에 완성도 높은 거란대자 해서체 폰트가 공개된 기념으로 거란대자에 관한 기사를 조금 작성해볼까 합니다. 이 글에 제시된 자소 목록은 비정기적으로 갱신됩니다. 자소 수가 400개 내외이며 풍부한 출토 자료를 바탕으로 심도 있게 연구된 거란소자와 달리, 거란대자는 무엇보다 자료의 양이 적은데다 자소 수는 방대한 탓에 충분한 연구가 시도되었다고는 말하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거란대자 자료는 중국 학계를 위주로 연구되고 있으며, 영미권과 일본 학계에서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국내에는 단국대학교 이성규李聖揆 명예교수가 은퇴 후 제출한 몇 가지 연구가 있습니다만, 여전히 재구음에서 명확한 한계를 갖는 중국측 연구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거란대자 연구..
거란문자 자료에 나오는 고려 거란소자 자료에는 종종 주변 민족과 국가가 언급됩니다. 거란문자 자료는 거란의 관점에서 주변국과의 관계사를 조망할 수 있는 새로운 재료를 제공합니다. 고려가 언급되는 정확한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비문의 상당 부분을 검토한 뒤 이미 알려진 사료와의 대조가 요구됩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거란소자로 기록된 거란어 문장을 빈틈없이 이해하기는 어려운 실정입니다. 이 글의 취지는 거란소자 자료에서 언급된 ‘고려’의 모든 용례를 포함하는 문장의 원문을 제시하고 대략적인 해석을 독자에게 제공하는 것입니다.야율포속리태부묘지명1105년에 새겨진 거란소자 《야율포속리태부묘지명耶律蒲速里太傅墓誌銘》의 묘주는 횡장橫帳 맹부방孟父房의 야율사제耶律思齊, 字는 𘭎𘰕 Bayň, 名은 𘰩𘬷𘲆𘱦 Puuzuğʷəər (1058..
거란어로 “동녘”은 doru가 아니다 나무위키의 ‘동란국’ 문서를 읽던 중 거란어에 관한 해묵은 학설을 마주쳤습니다. 우선 동단국의 丹을 ‘란’으로 읽을 동기가 전무하다는 문제는 이번 글의 주제가 아니므로 굳이 상세히 지적하지 않겠습니다. 해당 나무위키 문서에는 한문 사료에서 東丹國으로 기록된 국가가 거란문자 자료에서는 “동쪽”을 의미하는 접두어 없이 오직 ‘dan gur’로 나타난다는 기술이 나오는데, 제가 사용하는 오타케 마사미식 거란어 표기로는 𘰝𘬐 𘱚𘮒 taan gur [탄 구르]입니다. 바로 뒷 문장에 ‘mos-i gur’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추측건대 이것은 아이신교로 울히춘의 표기와 주장을 전용轉用한 것이 분명해보입니다. 해당 문서에서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거란어에서 “동쪽”을 의미한다고 여겨지는 수수께끼의 단어 *..
거란문자 자료에 나오는 발해 (1) 발해渤海는 고구려의 멸망 이후 당 무측천武則天 시대에 일어나 거란에 의해 멸망한 다민족 국가입니다. 발해가 스스로 남긴 역사 기록은 《정혜공주묘비貞惠公主墓碑》와 같은 희소한 한문 묘지를 제외하면 전하지 않으므로, 발해사를 탐구하기 위해서 오랜 기간 중국과 한국, 일본측 사서에 기록된 소략한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묘지명을 중심으로 한 거란문자 자료의 발굴 및 연구가 활성화되면서, 중국과 일본의 연구자들이 주축이 되어 거란의 관점에서 바라본 발해 관련 기록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과는 국내외 역사학자들이 인용하면서 이미 어느 정도 알려진 내용들이지만, 이 글의 취지는 거란문자 자료에 나타나는 발해 관련 내용의 원문을 한국어 독자에게 소개하는 것입니다. 이 글은 두 편으로 계획되어 ..
거란어로 본 토욕혼어, 토욕혼어로 본 거란어 토욕혼어吐谷渾語는 자료가 희소하여 알려진 바가 별로 없는 언어입니다. 지금까지 전하는 몇 안 되는 토욕혼어 자료는 토욕혼어 화자에 의해 생산된 자료와, 그 주변 지역의 다른 언어 화자가 생산한 자료의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저번 글에서 시독試讀해본  《모용지慕容智 묘지》는 토욕혼 문자라고 명명된 생경한 문자가 석각되어 있는데, 토욕혼어 화자에 의해 생산된 현전하는 유일한 자료로 여겨집니다. 토욕혼 왕국은 남쪽으로는 토번, 동쪽으로는 시대에 따라 다양한 중국, 소위 ‘탁발拓跋 국가’가 자리했습니다. 북쪽의 초원 오아시스 지대에는 시대에 따라 유연柔然 혹은 돌궐과 접경했습니다. 이 중 토번과 중국은 토욕혼의 언어에 관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티베트 문자 자료인 돈황 사본 《PT 1283》에는 거란의 ..
《모용지 묘지》의 토욕혼 문자 시독 2019년 12월 25일, 중국 간쑤성 톈주 티베트족 자치현 소재의 무덤에서 좌면에 가설적인 토욕혼吐谷渾 문자가 새겨진 묘지명(7세기 말?)이 발견되었습니다. 묘주는 토욕혼 왕국의 마지막 왕인 모용낙갈발慕容諾曷鉢의 삼남 모용지慕容智입니다. 토욕혼어는 선비·몽골어족 선비어파에 속하는 사멸한 언어로, 고유명을 포함한 몇 가지 단어와 단편적인 기록 외에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습니다. 선비족의 일파인 모용부가 서역에 세운 국가인 토욕혼은 서기 663년에 토번吐蕃에 의해 멸망하였습니다. 그런데 《모용지 묘지》에서 토욕혼 문자로 여겨지는 수수께끼의 한자계 문자가 새겨진 것이 확인되면서, 약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 묘지명에 새겨진 것이 정말로 토욕혼 문자로 적힌 토욕혼어라면, 이미 선비어파 중에서 거란어..
《낭군행기》의 마지막 글자는 정말로 “새기다”인가? 국내 거란어학 활성화의 일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는 김태경金泰京 소장의 저서 《거란문자: 천년의 역사, 백년의 연구》(2022)는 한국어 독자에게 있어 더할 나위 없는 훌륭한 거란어학 입문서입니다. 이 책이 출간된 때에 저는 군복무 중이었는데, 외출을 나가서 구입하여 부대 안에서 읽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이 책은 거란어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과 연구사, 또 연구자들이 겪은 소소한 일화를 소개함으로써 자칫 따분할 수도 있는 주제를 흥미롭게 다루었습니다. 특히 권말 부록에 있는 탁본 이미지는 무척이나 유용합니다. 그러나 간혹 이 책에 드러난 김태경 소장의 사견 중에 약간의 문제가 있다고 여겨지는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𘮧𘰗𘮚 pülügʷ “여분의”에 관해서는 이미 제 책(향문천 2024:94–97)에서..
거란어의 “쌍두사 문제”와 고대 한국어 어휘 차용 국내의 저명한 거란어 연구자인 김태경金泰京 소장 著 《거란소자 사전》(2019)에는 동물 “뱀”과 간지의 “巳”(이하 편의상 “뱀”으로 대표함)을 의미하는 거란어 단어의 거란소자 표기가 𘰕𘭞𘯶(p. 236)와 𘰗𘭞𘯶(p. 242)의 두 가지 형식으로 실려 있습니다. 두 표기는 오직 첫 번째 자소만 달라 혼동되기 쉬워보입니다. 이들이 동일 단어의 이표기인지, 아니면 한 쪽이 다른 쪽의 오독(혹은 오사)인지 판단하기 일견 곤란해보입니다만, 이 글에서는 제가 멋대로 명명한 “쌍두사 문제”에 대한 제 견해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먼저, 관견管見에 따르면, 거란어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중국 학계의 일반적인 입장은 𘰕𘭞𘯶 ‹iň-or-oo›를 틀린 것으로 간주하고 𘰗𘭞𘯶 ‹ül-or-oo›를 올바른 표기로 보는 것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