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란소자 자료에는 종종 주변 민족과 국가가 언급됩니다. 거란문자 자료는 거란의 관점에서 주변국과의 관계사를 조망할 수 있는 새로운 재료를 제공합니다. 고려가 언급되는 정확한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비문의 상당 부분을 검토한 뒤 이미 알려진 사료와의 대조가 요구됩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거란소자로 기록된 거란어 문장을 빈틈없이 이해하기는 어려운 실정입니다. 이 글의 취지는 거란소자 자료에서 언급된 ‘고려’의 모든 용례를 포함하는 문장의 원문을 제시하고 대략적인 해석을 독자에게 제공하는 것입니다.
야율포속리태부묘지명
1105년에 새겨진 거란소자 《야율포속리태부묘지명耶律蒲速里太傅墓誌銘》의 묘주는 횡장橫帳 맹부방孟父房의 야율사제耶律思齊, 字는 𘭎𘰕 Bayň, 名은 𘰩𘬷𘲆𘱦 Puuzuğʷəər (1058–1104)입니다. 묘주의 사적事績을 나열한 제8행에서 제14행 중에 고려가 두 차례 언급됩니다. 수창壽昌 3년(1097)에 고려왕의 책봉을 추진할 때 남원南院 호위태보직을 대행하였고, 같은 해에 고려에 다녀와 고려왕을 책봉하였다는 내용입니다. 졸역拙譯을 싣습니다.
“(壽昌) 3년에 興聖宮의 副宮使가 됨과 함께 고려 왕의 책봉 수여가 있으니 궁정에 이르렀다. 연이어 南院 護衛太保 직을 대행했다. 그 해 겨울에 고려 왕의 책봉을 내리러 다녀와서……”
《야율포속리태부묘지명》 제10–11행 발췌
𘲚𘲳𘲦 uuǰən의 의미는 불분명합니다. 형태가 유사한 𘲳𘲦 uǰən은 “안에”를 의미하는데, 양자를 동일 어휘의 이형태로 가정하면 “안에 이르렀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안”은 “궁정”을 가리킬 것입니다.
𘮶 𘮠𘱄𘱚 bud bər-ləg은 “호위護衛”를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𘮶 bud는 “몸”을 의미하므로, 𘮠 bər-는 아마도 “지키다” 정도의 의미를 갖는 동사로 추측됩니다. 같은 동사가 한국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거란소자 칠언절구 동경의 결구結句에서 𘮠𘱤 bər-ii의 꼴로 나타납니다. 의미 미상의 형동사 어미 𘱄𘱚 -ləg는 고대 튀르크어 -lig / -lıγ와 관련이 있어보이나 그 역할이 분명하게 밝혀진 것은 아닙니다.
소토고사상서묘지명
1068년에 새겨진 거란소자 《소토고사상서묘지명蕭圖古辭尙書墓誌銘》의 묘주는 발리拔里 국구장國舅帳의 소토고사蕭圖古辭, 字는 𘰩𘳕𘲚𘭌 Puunuuň, 名은 𘰺𘯜𘱴𘲫 Toγozər (1018–68)입니다. 묘주의 가계를 나열한 제2행에서 제5행 중에 고려가 한 차례 언급됩니다. 남부도지南府都知가 된 뒤 공을 쌓아 북면도승지北面都承旨로서 이름을 떨쳤다는 내용 다음에 동쪽으로는 고려, 서쪽으로는 서하를 공격했다는 내용이 뒤따릅니다. 이처럼 방위와 민족명을 나열하여 공덕을 추켜세우는 서술 방식은 고대 튀르크어 비문에서도 비교적 흔하게 나타납니다. 졸역拙譯을 싣습니다.
“大王은 南軍에 복무하여 공을 세웠다. 北蕃을 통솔하여 명성을 얻었다. 동녘의 고려를 평정했다. 서녘의 서하를 정벌했다.”
《소토고사상서묘지명》 제2행 발췌
우잉저吳英喆 외(2017:1275)를 바탕으로 전산화했습니다만, 몇 가지 교정 사항이 있습니다. 먼저 문맥을 고려하여 𘮾𘲫𘮒 ‹ald-ər-ur›를 𘮾𘲚𘮒 ‹ald-uu-ur›로 교정했습니다. 비석의 마멸 상태에 따라 𘲫‹ər›와 𘲚‹uu›는 혼동되기 쉽습니다.
글리프 단위로 수록하는 Unicode의 정책 상, 거란소자 𘲱 ‹ǰaa›는 모양이 흡사한 孔 ‹boy›를 포섭包攝하고 있습니다. 이는 실제로 많은 학자들이 둘을 같은 자소의 변종으로 간주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타케大竹(2016:5)는 돌궐어 buyruq “매록梅錄”과 거란소자 표기 孔𘰣𘯜 boyroγʷ ~ 孔𘰣𘰹 boyrʊγʷ “재상宰相”을 비교하면서 孔 ‹boy›를 별개의 자소로 설정하였습니다. 위 문장에 나타나는 孔𘰴 boyd는 문맥상 “서녘의”를 의미할 것으로 기대되는데, 이는 분명 𘬶 boyn “서녘에”의 파생형일 것이므로 𘲱 ‹ǰaa›와 孔 ‹boy›를 구별해야 하는 또 하나의 근거가 됩니다. 이러한 점을 교정에 반영했습니다.
소호도근태사묘지명
1091년에 새겨진 거란소자 《소호도근태사묘지명蕭胡睹堇太師墓誌銘》의 묘주는 발리拔里 국구장國舅帳의 홀돌근忽突菫, 字는 𘰺𘱄𘱯𘱸 Tələğəəň, 名은 𘱛𘳑𘰕 Χodʊγʊň (1041–91)입니다. 묘주의 가계를 나열한 제3행에서 제8행 중에 고려가 한 차례 언급됩니다. 졸역拙譯을 싣습니다.
“達領部의 통치를 ×× 떠맡아 동쪽으로는 고려를 불태웠다. 서쪽으로는 서하 都統이 들어와 타타르 조복을 정벌하고 達領部가 태평해지니 南 ××를 떠맡아……”
《소호도근태사묘지명》 제4행 발췌
“고려를 불태웠다”는 것이 올바른 번역인지는 확신이 없습니다. 또한 여기서 𘰺𘰆𘰥𘲦는 마멸 탓에 판독이 어렵지만 문맥 상 서하가 나와야 할 자리이므로 제가 임의로 교정한 것입니다.
도종황제애책
거란소자 《도종황제애책道宗皇帝哀冊》의 묘주는 거란국의 제8대 가한可汗인 도종입니다. 일부 행은 글자를 갈아내지 않고 그 위에 비문을 고쳐 새긴 흔적이 있어 판독이 곤란합니다. 저는 지스卽實(2012)의 교감본과 우잉저 외(2017:618)와 김태경(2022:369)에 제시된 탁본의 보정 이미지를 바탕으로 ‘고려’가 언급되는 문장 전후 일부분을 전산화했습니다. 아래에 제 졸역拙譯을 싣습니다.
“宋의 적을 토벌하게 하면서 서하국이 다스린 백성의 ××을 얻게 했다. 한 사신을 파견하여 잠시 고려를 信依×× 칭송×× 다스려 加授했다, 兒名을. 위구르는 명성을 구하러 ×× 들었다, 며느리의 마음을. 변방의 糺軍을 잠시 출병시켜 三水의 여진을 ×× 정벌했다.”
《도종황제애책》 제24–25행 발췌
아쉽게도 이곳에 제시된 번역은 완벽과는 거리가 멉니다. 문장을 어디에서 끊을지, 어순의 도치를 어떤 방식으로 판단할지, 역할이 불분명한 문법 요소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따라 번역문은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번역문의 정도精度는 앞으로 연구의 발전을 기다려야 합니다. 제가 제시한 글로스를 바탕으로 더욱 개연성 있는 역문을 구성하실 수 있는 분께서는 부디 댓글로 교시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또한 거란소자 자소 배열 규칙 및 거란어 형태론에 의거, 탁본에서 𘭕𘱄𘭂𘲑 ‹əw-əl-ağ-ar›처럼 보인 어절을 𘭗𘱄𘭂𘲑 ‹aľ-əl-ağ-ar›으로 교정했습니다.
양국왕묘지명
1107년에 새겨진 거란소자 《양국왕묘지명梁國王墓誌銘》의 묘주는 발리拔里 국구소옹장國舅小翁帳의 소출철蕭朮哲, 字는 𘬥𘮯𘲆𘭌 Šiluğuň, 名은 𘲮𘯤𘱮 J̌uurǰəə입니다. 다른 한 명의 묘주는 그 태비太妃입니다. 고려가 한 차례 언급되지만 문장의 뜻을 파악하는 것은 어려운 형편입니다.
×× 이다. 고려의 첫 ×× 이다. 머무르라 ×× 그림자(?)를 따른 字이다.
《양국왕묘지명》 제12행 발췌
𘰓𘱪𘱄𘲲 ‹om-əld-əl-aγ›를 𘰓𘱴𘱄𘲲 ‹om-oz-əl-aγ›로 임의로 교정하여 “和하다-ʟɢ”로 글로스하였습니다.
마무리
이곳에 제시된 거란소자 원문이 제대로 빛을 발하려면 거란어 연구의 발전을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고려와 거란의 관계에 대해 알고자 하는 분께 미약하게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각각의 어의語義의 출전은 각주를 달기 곤란한 개인 블로그의 특성 상 빈틈없이 제시하는 것은 어려움이 있으며 너그러이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참고자료
- 김태경(2022)《거란문자: 천년의 역사, 백년의 연구》민속원
- 大竹昌巳(2016)「契丹小字文獻における「世選之家」」『KOTONOHA』159:1–12
- 吳英喆 외(2017)《契丹小字再硏究》內蒙古大學出版社
- 卽實(2012)《謎田耕耘:契丹小字解讀續》遼寧民族出版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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