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위키의 ‘동란국’ 문서를 읽던 중 거란어에 관한 해묵은 학설을 마주쳤습니다. 우선 동단국의 丹을 ‘란’으로 읽을 동기가 전무하다는 문제는 이번 글의 주제가 아니므로 굳이 상세히 지적하지 않겠습니다. 해당 나무위키 문서에는 한문 사료에서 東丹國으로 기록된 국가가 거란문자 자료에서는 “동쪽”을 의미하는 접두어 없이 오직 ‘dan gur’로 나타난다는 기술이 나오는데, 제가 사용하는 오타케 마사미식 거란어 표기로는 𘰝𘬐 𘱚𘮒 taan gur [탄 구르]입니다. 바로 뒷 문장에 ‘mos-i gur’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추측건대 이것은 아이신교로 울히춘의 표기와 주장을 전용轉用한 것이 분명해보입니다. 해당 문서에서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거란어에서 “동쪽”을 의미한다고 여겨지는 수수께끼의 단어 *doru를 언급합니다. 이 역시 아이신교로(2009:183)의 기술을 바탕으로 작성된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doru는 존재하지 않는 허상의 단어이며, 이 문제는 다케우치Takeuchi (2015)에서 명쾌하게 해결되었습니다.
문제의 발단
아이신교로에 따르면, 𘭶𘰥 *doru는 거란어에서 “동쪽”을 의미하는 방위 어휘입니다. 이 두 글자에 대한 아이신교로의 재구음은 현재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지원역어至元譯語》의 唾羅納, 《화이역어華夷譯語》의 朵羅納 등의 중세 몽골어(아이신교로 2004:51)와 거란어가 동원어를 공유할 것이라는 암묵적인 가정 하에 설정된 부실 재구음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른 시기의 연구에서는 중세 몽골어와 거란어 사이의 음운대응 관계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적지 않은 잘못된 가정과 전제가 쌓여 다양한 ‘쌍두사 문제’를 만들어냈습니다. 𘭶의 추정음이 *do가 된 것도 중세 몽골어 데이터 외에는 어떠한 근거도 없습니다. 실은 오타케(2020)는 자신의 자소 목록에서 기존에 설정된 𘭶 *do를 𘭴 ‹um›의 오인으로 판단하여 삭제했습니다. 올바른 판단입니다.
아이신교로의 저술 가운데 𘰥의 음가에 대해 확인 가능한 가장 이른 시기의 기술은 《契丹語言文字研究》(2004) 32쪽에 짤막하게 언급된 “𘰥所表示的語音可能是 ur ~ ru”입니다. 그런데 우잉저의 ‘표절 행위’를 주필誅筆하기 위해 작성된 아이신교로의 2012년 논문에서는 𘰥에 대한 자신의 재구음으로 *ur만을 제시합니다. 이는 동일한 표음 자소가 수의적으로 음소 배열을 뒤바꿔 사용될 수 있었음을 주장하는 것일까요? 2009년 이후로 *doru에 관한 언급을 적어도 저는 더 이상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그녀의 현재의 견해가 어떠한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𘰥의 음가는 어차피 *ur나 *ru가 아니라 ‹ud›이기 때문에 *doru가 틀렸다는 것만은 단언할 수 있습니다. 다케우치(2015:456)는 𘰺𘰆𘰥가 “탕구트”를 의미하는 것을 주목하여 𘰥의 음가를 ‹ud›로 정확하게 파악했습니다.
올바른 형태
존재하지 않는 자소 𘭶는 𘭴 ‹um›를 오인한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동쪽”을 의미하는 또 다른 거란소자 표기인 𘭚 ‹üm›과의 비교를 통해, 𘭴𘰥 umud와 𘭚𘭁 ümüd는 각각 같은 형용사의 남성 형태와 여성 형태임이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거란어에서는 일부 형용사의 여성 단수형이 모음의 전설화라는 형태 조작에 의해 형성된 것이 확인됩니다(오타케 2016).
사실 거란문자 자료에서는 東丹國의 東에 해당하는 부분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그다지 중요한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사소한 잘못이어도 이런 식으로 바로잡는 편이 낫습니다.
참고 자료
- 大竹昌巳(2016)「契丹語形容詞の性・数標示体系について」『京都大学言語学研究』35:59–89
- (2020)『契丹語の歴史言語学的研究』京都大学博士学位論文
- 愛新覚羅烏拉熙春(2004)《契丹語言文字研究》東亜歴史文化研究会
- (2009) 『愛新覚羅烏拉熙春女真契丹学研究』松香堂書店
- (2012)「契丹小字の音価推定及び相関問題」『立命館文学』627:157–129
- Takeuchi, Y. (2015). Direction Terms in Khitan. Acta linguistica Petropolitana. XI: 453–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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