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무위키로의 전재를 단호히 사절


언어/선비·몽골어족

거란대자 자소의 표음 유형에 따른 분류

Jerry You 씨가 운영하는 고금문자집성古今文字集成에 완성도 높은 거란대자 해서체 폰트가 공개된 기념으로 거란대자에 관한 기사를 조금 작성해볼까 합니다. 이 글에 제시된 자소 목록은 비정기적으로 갱신됩니다.

 

자소 수가 400개 내외이며 풍부한 출토 자료를 바탕으로 심도 있게 연구된 거란소자와 달리, 거란대자는 무엇보다 자료의 양이 적은데다 자소 수는 방대한 탓에 충분한 연구가 시도되었다고는 말하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거란대자 자료는 중국 학계를 위주로 연구되고 있으며, 영미권과 일본 학계에서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국내에는 단국대학교 이성규李聖揆 명예교수가 은퇴 후 제출한 몇 가지 연구가 있습니다만, 여전히 재구음에서 명확한 한계를 갖는 중국측 연구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거란대자 연구는 아직 체계화되지 못하였으며, 연구 자료의 접근성은 상당히 떨어집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는 거란대자 자소의 체계적인 정리를 위하여 2010년대 이래 성립한 발전된 거란어 재구 체계를 바탕으로 거란대자 자소를 표음 유형 별로 분류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당연하지만 거란대자의 자소 수는 방대하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이곳에 철저한 유형별 자소 분류 목록을 제시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일부는 거란대자 자소를 3천 가지 이상으로 헤아립니다만, 병합되어야 하는 이체자 관계를 별도로 고려한 수치이므로 저는 실제보다 과장된 수치라고 간주합니다. 이 글에서는 거란소자와의 대응 연구를 통해 얻어진 거란대자 각 자소의 재구음을 바탕으로 초보적인 고찰을 거쳐 이들을 몇 가지 유형을 분류해보고자 합니다.

 

작업에 앞서, 통념과 달리 저는 거란대자가 완전한 표음문자 체계라는 가설을 세우겠습니다. 거란대자 자소의 상당수가 한자의 외형을 그대로 차용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가정은 유효합니다.  ‹uul›은 한자 冬겨울 동 자와 외형이 일치하는데, 이는 “겨울”을 의미하는 거란어 단어가 𘲚𘲀 uul이기 때문입니다. 한자에 크게 영향을 받은 거란대자는 문자 발생의 관점에서 기원이 된 한자가 갖는 의미와 결부하여 표의성을 논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문자 발생 과정을 추상하고 철저히 거란어를 표기하는 문자 체계의 관점에서 바라볼 경우, 통념과 달리 거란대자로부터 표음성만을 인정할 수밖에 없어집니다.  ‹uul›은 “겨울”이라는 단어에 한정적으로 쓰이는 자소가 아니며,  ‹uul-əh-əəň› uu-ləh-əəň “시집들었다”처럼 형태소 경계와 무관하게 오로지 표음적으로 사용됩니다. 또한, 단일 자소가 복수의 음가를 갖지 않는 단가성의 가설monovalence hypothesis, 상이한 자소가 동일한 음가를 갖지 않는 이가성의 가설heterovalence hypothesis을 전제로 삼겠습니다.

 

이 글에서 제시된 각 자소의 추정 음가는 소자와 대자 간의 대응을 통해 얻어진 것이나, 그 대응이 정확하다는 보장이 없으므로 잠정적입니다. 또, 여담이지만 대자와 소자 간에 외형이 일치하는 자소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이들 사이에서 명확한 관련성이 도출되지는 못합니다. 일례로  ‹puu›와 𘮒 ‹ur›가 그러합니다.

 

어두 C형 자소

거란소자에서는 어두 자음을 나타내기 위해 무표적인 VC형 자소를 재활용합니다. 해당 자소가 어두에 나타날 경우에 모음을‘삭제’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𘰷𘲦 ‹əz-ən› əzən과 같이 무표적인 VC형 자소의 모음이 어두에서 삭제되지 않는 경우도 소수나마 문증됩니다. 이는 거란소자 체계에서 모호성을 유발하는 요소입니다. 여기서 가장 큰 논점은 거란대자 체계에서 예컨대 VC형 자소를 재활용하지 않고 별도의 독점적인 어두 C형 자소가 마련되어 있는지가 되겠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태보太保”를 의미하는 거란소자 𘲈𘮽 ‹tay-əb› tayb에 대응되는 거란대자  ‹tay-əb›?로부터 = 잠정적인 ‹əb›를 도출할 수 있다고 할 때, 거란소자 체계에서는 𘮽가 어두 b를 나타내는 데 사용되지만 거란대자 체계에서는 =가 어두 자음을 나타내는 데 사용된 용례가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게 됩니다. 이와 반대로 어두 자음 전용 자소일 가능성이 있는 가 있습니다.  ‹č-əər›? čəə-r “짓다-pst.m”와  ‹č-əh-əəl›? čəh-əəl “나란히.하다-sml”로부터 잠정적인 어두 C형 자소 ‹č›를 도출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거란소자 체계의 관점에서 볼 때, 후술할 CV형 자소가 모음 중복 규칙에 따라 후행 자소의 장모음과 중첩되어 나타날 수 있는 환경이므로, 실제로는 ‹čəə›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또 다른 논점은 어두에서 강자음과 약자음을 나타내는 자소가 철저하게 구별되는지입니다. 거란소자에서는 어두 약자음을 나타내는 단모음 VC형 자소와 어두 약자음과 강자음을 모두 나타낼 수 있는 장모음 VC형 자소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 또한 거란소자 체계에서 모호성을 유발하는 요소입니다. 따라서, 또 하나의 주요 논점은 거란대자 체계에서 어두 약자음과 강자음 자소가 철저하게 구별하는지가 되겠습니다.

 

위와 같은 고찰은 다음과 같이 거란소자 𘰺 ‹əəd› (어두에서 t/d-) 𘰴‹əd› (어두에서 d-)에 대응되는 거란대자 자소 네 개를 통해 보다 심화적으로 논할 수 있습니다.

   ‹d-əh-əər›

   ‹ay-əd›

   ‹mөө-əəd›

   ‹dəə-əb›

이를 통해 ‹əd›에 해당하는 거란대자 가 어두 환경에서 재활용되는 일 없이 별도의 자소  ‹d›가 마련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와 같이 한자음의 성모와 운모를 모두 나타낼 수 있는 자소도 존재하며, 이는 거란소자 체계와 마찬가지로 VC형 자소가 어두 자음을 나타내는 용도로도 쓰일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와 더불어 두 번째 논점 역시 거란대자에서 어두 ‹t›에 해당하는 자소를 제가 아직 확인하지 못하였으므로 모두 판단을 유보하겠습니다. 주의를 요하는 것은, 거란대자  ‹dəə›는 종종 거란소자였다면 어두 𘰺 ‹əəd› 및 𘰴‹əd›가 나올 자리에 출현함으로써 어두 C형 자소인 것처럼 보이지만,  ‹dəə-əb›는 거란소자의 𘰴𘮧 ‹əd-əəb› dəəb에 대응되므로 CV형 자소일 것이 기대됩니다. 거란대자 체계는 CV형 자소를 보다 풍부하게 갖추고 있으므로 이러한 착시 효과를 유발하는 것입니다.

 

거란대자 체계에는 어두 C형 자소라는 개념의 필요성이 낮아 코퍼스에서 그다지 빈출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VC형 자소가 지배적인 거란소자 체계와 달리, 거란대자는 초두 자음을 포함하는 음절형 자소가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V형 자소

거란소자와 마찬가지로 장모음만을 허용할 것으로 가정합니다. 거란소자 체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장모음의 모음 중복 규칙이 적용될 수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부통副統”을 의미하는 거란대자  ‹puu-uu-tuungʷ›에서 CV형 자소와 V형 자소가 잇달아 나타날 수 있음이 확인됩니다. 주목을 요하는 것은 거성去聲 음절인 副에 대한 거란대자 표기가 거란소자 정서법에서 나타나는 한자음의 잉여 표기와 비교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V a- ə- i- o- ʊ- ɵ- u- ä- e- ö- ü- ı-
- ?
(?)
(ʊʊ?)

?

? ?
-y × ? × × × ? ×
×
-w ? ? × × × × × ? × × ×

VC형 자소

단모음과 장모음 모두 허용합니다. 거란대자는 거란소자에 비해 장모음을 포함하는 VC형 자소를 보다 풍부하게 갖추고 있습니다. 거란소자는 əC형 자소만이 장모음을 허용하여, 그 외의 장모음 VC형 음절에 대해서는 적어도 2개 이상의 자소를 필요로 한다는 점과 대비됩니다. 거란대자는 이처럼 압축성이 높은 대신에 자소의 수가 많습니다. 앞서 언급한 거란대자의 표음성과 더불어, 이것이 제가 거란대자를 ‘비대하고 비효율적인 거란소자’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장모음을 포함하는 VC형 자소는 위의 목록보다 더 다양한 모음을 포함하여야 할 것입니다. 거란소자와 거란대자 표기에서 반드시 모음의 장단이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요대遼代의 연호 보녕保寧은 거란소자 표기 𘰺𘱪 𘳈𘯺𘮢 dəld doraaň,  거란대자 표기  ‹dəld-dor-aň›로 나타납니다. = ‹dor›은 거란소자 𘳈 dor “印, 禮”와의 대응을 통해 추정음이 얻어지며,  ‹aň›은 거란소자 𘮽𘲲𘮢 baγ-aň “아이-pl”에 대응되는 거란대자  ‹baγ-aň›를 통해 단모음을 포함하는 VC형 자소일 것이 기대됩니다.

VC a- aa- ə- əə- i- ii- o- oo- ʊ- ɵ- u- uu- e- ee- ö- öö- ü- üü-
-d                              
                                   
-g                                  
-gʷ                                  
                                   
-γʷ                                  
-b                                  
-z                              
                                 
-r                    
-y         ?                   
-h                                  
-hʷ                                  
-ḥ                                    
-ḥʷ                                    
-w                                    
-n ?                 
                             
-m                                
-l     =                          
                                 

VCC형 자소

단모음과 장모음 모두 허용할 것으로 가정합니다.

   ‹əld›  ‹ənd›  ‹əwr›

   ‹ilb›  ‹ižd›

   ‹ond›

   ‹ungʷ›  ‹urǰ› 등

 

   ‹oord› 등

CV형 자소

거란소자와 마찬가지로 CV형 자소는 예외없이 장모음만을 허용할 것으로 가정합니다.

CV -a -i -o -u -e
t-                    
d-                    
č-                    
ǰ-                   ?
k-                    
g-                      
kʷ-                        
gʷ-                        
χ-                    
γ-                        
χʷ-                        
γʷ-                        
p-                    
b-                      
s-                     ?
?
š-                
y-                        
w-                        
n-                 ?  
ň-                     ?  
m-                    
ŋ-                      
l-                      

CVC형 자소

단모음과 장모음, 심지어 이중모음도 허용합니다. 단모음을 포함하는 자소를 제외하면 모두 거란소자에 없는 유형입니다. 단모음을 포함하는 자소의 경우에도 거란소자에 비해 훨씬 풍부하게 갖추고 있습니다.

   ‹baγ›  ‹beγ›

   ‹dəm›  ‹dəw›  ‹dil›  ‹dor›

   ‹guy›

   ‹ǰaw›  ‹ǰəw›

   ‹non›

   ‹ňar›  ‹ňay›

   ‹pul›

   ‹səm›

   ‹tig›

   ‹yer›

   ‹žiň› 등

 

   ‹ňaar›  ‹geem› 등

CVCC형 자소

거란소자에 없는 유형이며 단모음과 장모음 모두 허용합니다.

   ‹ǰuurǰ›  ‹kənd›  ‹χayl› 등

초중음절 및 다음절 자소

“행궁行宮”을 의미하는  ‹oord-uu› (혹은 ‹ʊʊrd-uu›?)를 통해  ‹oord›를 도출하면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됩니다. 요대遼代의 연호 대안大安의 거란소자 표기 𘲇 𘱵𘰼𘯶𘯎 mää oordoḥooň과 비교하여, 대응되는 거란대자 표기 를 ‹mää-oord-oḥooň›와 같이 분석할 수 있습니다.  ‹oḥooň›와 같이 거란대자 자소 중에 한자로 치면 삼수변 등을 포함하는 자소가 복잡한 표음 양상을 띄는 경향이 있어보이는데, 중국의 거란어학자 타오진陶金 씨가 논한 거란대자 일부 자소의 조합적인 표음 성질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거란소자에서 소수를 점하는 다음절 자소 유형은 거란대자에서도 확인됩니다.  ‹tadʊʊ›에 관해서는 이 글에서 간략하게 다루었습니다. 거란소자의 다음절 자소와 거란대자의 다음절 자소가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단일 자소로 표기되는 χoduγʷ “복”은 거란대자에서는  ‹χod-uγʷ› 두 개 자소로 표기되어 오히려 더 깁니다. 거란어 인명  ‹ňar-ʊḥʊň› “涅魯袞” 및  ‹χod-ʊḥʊň› “胡睹菫”의 사례도 다음절 자소의 존재를 시사합니다. 요대遼代의 연호 중희重熙는 거란소자 표기 𘰲 𘱵𘱄𘭂𘲑 ňaar oordlaḥar, 거란대자 표기  ‹ňaar-oordlaḥar›와 같이 문증됩니다. 이 때, 거란소자 표기와의 비교를 통해 거란대자  ‹oordlaḥar›를 상정하게 됩니다.

 

《야율연녕묘지명》(986년)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