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무의미한 비밀 댓글은 무통보 삭제


언어/선비·몽골어족

거란문자 자료에 나오는 발해 (1)

반응형

오타케(2018) 구술발표 〈거란어를 부감하다〉(契丹語を俯瞰する) 자료 1쪽에 실린 지도.

 

발해渤海는 고구려의 멸망 이후 당 무측천武則天 시대에 일어나 거란에 의해 멸망한 다민족 국가입니다. 발해가 스스로 남긴 역사 기록은 《정혜공주묘비貞惠公主墓碑》와 같은 희소한 한문 묘지를 제외하면 전하지 않으므로, 발해사를 탐구하기 위해서 오랜 기간 중국과 한국, 일본측 사서에 기록된 소략한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묘지명을 중심으로 한 거란문자 자료의 발굴 및 연구가 활성화되면서, 중국과 일본의 연구자들이 주축이 되어 거란의 관점에서 바라본 발해 관련 기록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과는 국내외 역사학자들이 인용하면서 이미 어느 정도 알려진 내용들이지만, 이 글의 취지는 거란문자 자료에 나타나는 발해 관련 내용의 원문을 한국어 독자에게 소개하는 것입니다.

 

이 글은 두 편으로 계획되어 있습니다. 이번 글인 제1편은 거란소자 자료에 나타나는 “발해의”를 의미하는 형용사의 남성형, 여성형, 복수형을 중심으로 전개하며, 제2편은 최근 중국의 연구자 타오진陶金(2023)에 의해 밝혀진 대응되는 거란대자 표기를 다룰 계획입니다. 또한 거란문자 자료를 부르는 명칭은 학자마자 천차만별하기에, 독자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여러 명칭을 풍부하게 덧붙였습니다.

발해 성왕 대인선의 후예

발해가 언급된 가장 이른 시기의 거란소자 자료는 《야율종교묘지명耶律宗敎墓誌銘(1053년)입니다. 다른 명칭으로 우잉저吳英喆(2017)의 《대거란국광릉군왕묘지명기大契丹國廣陵郡王墓誌銘記》, 아이신교로愛新覺羅의 《대중앙거란호리지국고광릉군왕묘지명大中央契丹フリジ国故廣陵郡王墓誌銘》, 지스卽實(2012)의 《여분묘지旅奮墓誌》, 오타케大竹(2020)의 《Čawň Lüü-fun 대왕(야율종교)묘지명大王(耶律宗教)墓誌銘[LUF] 등이 있습니다.

 

광릉군왕廣陵郡王인 야율종교의 가계에 대해 간략히 적습니다. 묘주의 명은 𘱄𘮡𘱟 Lüü-fun, 자는 𘬞𘰕 Čawň, 한명漢名 야율종교耶律宗敎, 통화統和 9년(991) 생, 중희重熙 22년(1053) 졸, 향년 63세. 조부는 거란국 제5대 가한인 경종황제景宗皇帝, 부친 진진국왕秦晉國王은 경종의 차남인 야율융경耶律隆慶. 모친은 한문 문장에 따르면 발해 성왕의 ‘손녀’인 지녀遲女 낭자입니다. 이밖에 장남 𘮊𘱫𘱪 Čəwngʷəld와 차남 𘭜𘱤 Terii를 두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발해 성왕의 ‘손녀’라고 하는 야율종교의 모친입니다. 거란소자 문장에는 지녀 낭자의 이름 앞에 𘲜𘰣𘯗𘱤 mirgii라는 여성 형용사가 붙는데, 아이신교로는 이것을 기록되지 않은 발해인의 성씨로 보았고, 왕성인 대씨와 통혼 관계와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타케(2016:85)는 발해의 별칭인 물길勿吉과의 음운적인 대응 등으로부터 발해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았고, 타오진(2023) 또한 성씨가 아닌 민족명으로 보았습니다.

 

𘬝mөө어머니 𘲜𘰣𘯗𘱤mirgii발해의.f 𘲽𘰕𘲚čiňuupn 𘰒𘱆ağʊy낭자 𘰝𘬐taanpn 𘱚𘮒𘲦gur-ən나라-gen 𘮡üü거룩(?) 𘭅χaa군주 𘭞𘯜𘲵oroγʷ-onpn-gen 𘭞𘯺𘮇oraad뒤의.m 𘮧𘲵pon자손(m) 𘲤𘭂𘲐nağay외가.여성.손위.친족 𘮧𘱤𘲦bii-n妃-gen 𘲽𘱤𘬪čiiž피(f) 𘬾𘬜𘱸χarəy-əəň잇다-pst.f

어머니는 발해인 Čiňuu 낭자. 단국의 성한聖汗 Oroγʷ의 후예인 외가 왕비의 피를 이었다.

《야율종교묘지명》 제3–4행 발췌

 

여담이지만 아이신교로와 타오진은 윗 문장의 𘭞𘯺𘮇 ‹or-aa-ad›를 𘭞𘯺𘲵 ‹or-aa-on›으로 교정 없이 그대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란소자의 자소 배열 규칙을 고려했을 때 올바른 철자는 전자여야만 하며 지스도 이와 같이 교감했습니다. 실제로 다른 자료에서 문증되는 형태도 𘭞𘯺𘮇입니다.

 

同 비명의 지석誌石에 새겨진 한문 문장에는 “母曰蕭氏,故渤海聖王孫女,遲女娘子也。”라고 대응되는 내용이 나타납니다. 한문 문장에서는 발해 성왕이 누구인지 자세히 언급되지 않지만 거란소자 문장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보기는 926년 친정親征에서 발해를 멸망시키고 동단국東丹國(간혹 ‘동란국’이라고 읽는 놀라운 사람들이 있지만 그 문제는 패스)을 세워 태자 야율배耶律倍(거란명은 突欲, 圖欲)를 인황왕人皇王으로 봉하였습니다. 𘭞𘯜 Oroγʷ은 발해의 마지막 왕인 대인선大諲譔에게 거란이 하사한 이름으로, 《요사》에는 오로고烏魯古라고 나옵니다. 거란의 묘지명은 한문과 거란문의 찬자가 각기 달랐던 탓에 한문 묘지로부터 알 수 없는 정보를 종종 거란문 묘지로부터 확인할 수 있습니다. 거란어 연구는 높은 역사학적 가치를 갖습니다.

 

지녀 낭자의 가계에 대해서는 거란어 𘲤𘭂𘲐 nağay의 의미 비정에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분분한 점이 있습니다. 아이신교로(2011:111)는 “외조부”로 보는 반면 오타케(2020:499)는 이 문제를 명시적으로 다루지 않았으나 의미를 “외가의 여성 손위 친족”으로 제시합니다.

부마도위 대력추

대력추大力秋는 그 성씨로부터 유추할 수 있듯이 발해 출신입니다. 역추力秋가 거란소자 자료에서는 입추立秋가 되어버리는 이유에 대해서는 많은 추측이 나와 있지만, 아마도 요대 중국어 시기에는 이미 입성 운미가 탈락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대력추의 인명을 표기한 실제 거란소자 용례에서 立이 입성운미를 포함하는 𘱄𘲕 lib으로 나타난다는 점은 의아합니다. 《요사》는 원대에서야 성립하는 문헌이며, 현전하는 가장 이른 판본은 명대 홍무간본洪武刊本이므로, 동시대 기록인 거란소자 자료가 제시하는 입추立秋를 따르는 편이 낫겠습니다.

 

대력추의 가계가 언급된 거란소자 자료는 《야율영녕낭군묘지명耶律永寧郞君墓誌銘(1088년)과 《야율상온묘지명耶律詳穩墓誌銘(1091년)이 있습니다. 전자는 다른 명칭으로 류펑주劉鳳翥의 《영녕군공주묘지永寧郡公主墓誌》, 지스의 《영눌묘지永訥墓誌》, 오타케의 《Yuŋguň 낭군묘지명잔문郎君墓誌銘残文[YUN] 등이 있습니다. 후자는 다른 명칭으로 아이신교로의 《가한횡장중부방연녕상온묘지可汗横帳仲父房連寧詳穏墓誌》, 오타케의 《Leenəň Χaar 상온묘지명詳穏墓誌銘[LEN] 등이 있습니다.

 

𘬝mөө아내 𘯥kuu  𘲜𘰣𘯗𘱤mirgii발해의.f 𘰩puu 𘰺𘬜dəy 𘰩𘬪𘰕puužiň부인 𘱄𘲕lib 𘰷𘬛siw 𘰩puu 𘲜𘯺maa 𘲉𘰆čaanγ 𘱚𘱮gəə 𘱚𘱫gungʷ 𘮏𘮡ǰüü 𘲝𘲦ǰir-ən둘.f-gen 𘮽𘯛beγ아이

아내 발해인 Puu dəy 부인은 Lib siw 부마, Čaanγ gəə 공주 둘의 아이.

《야율영녕낭군묘지명》 제25행 발췌

 

𘰺𘱓𘭛𘱮teenəəpn 𘰩𘬪𘰕puužiň부인 𘲜𘰣𘱚𘲫mirgər발해의.m 𘱄𘲕lib 𘰷𘬛siw 𘰩puu 𘲜𘯺maa 𘲉𘰆čaanγ 𘱚𘱮gəə 𘱚𘱫gungʷ 𘮏𘮡ǰüü 𘲝𘲦ǰir-ən둘.f-gen 𘮽𘯛beγ아이

Teenəə 부인은 발해인 Lib siw 부마, Čaanγ gəə 공주 둘의 아이.

《야율상온묘지명》 제13–14행 발췌

 

𘲜𘰣𘱚𘲫 mirgər는 앞서 살펴본 여성 형용사 𘲜𘰣𘯗𘱤 mirgii에 대응하는 남성형입니다. 《야율상온묘지명》에서 대력추의 이름 앞에 남성형이 나온 데 반해 《야율영녕낭군묘지명》에서는 대력추의 딸에 대해 여성형이 사용되었습니다. 이 두 묘지명의 대조를 통해 발해라는 국가가 이미 멸망한 상황에서 민족명으로서 아버지로부터 딸에게 발해 민족을 뜻하는 호칭이 계승되었음이 확인됩니다.

 

대력추와 혼인 관계를 맺은 장가長哥 공주는 거란 최전성기를 다스린 제6대 가한 성종聖宗의 팔녀로, 《요사》 공주표에는 장수長壽 공주로 잘못 기재되어 있습니다(아이신교로 2011:32). 대력추는 발해부흥운동을 일으킨 대연림大延琳의 반란에 연루되어 주살誅殺되었고, 장가 공주는 거란의 풍속에 따라 재혼하지만 후사를 남기지 않았습니다.

분명하지 않은 용례

아이신교로는 𘲜𘰣𘯗 mir(i)g과 𘲜𘰣𘯗𘱤 mirgii는 발음이 서로 비슷하지만 다른 단어로 보았으며, 또 𘲜𘰣𘱚𘰷 mirgəz를 발해와 관련짓지 않고 《요사》 권29에 나오는 부족명 밀아기密兒紀와 가깝다고 하며 중화서국본 교감기의 ‘卽元秘史之篾兒乞’을 언급합니다. 반면 타오진(2023:226)은 𘲜𘰣𘱚𘰷 mirgəz가 발해궁호渤海宮戶일 것이라고 했으며, 오타케(2016:85)도 𘲜𘰣𘱚𘰷 mirgəz를 “발해의”라는 형용사의 복수형으로 보았습니다. 아래에 《야율고십영공묘지명耶律高十令公墓誌銘(1076년 이후 도종 연간)에 나오는 고례孤例의 졸역拙譯을 싣습니다. 아이신교로의 《대중앙호리지거란국척은사계부방진왕장겸중서영개국공왕녕묘지大中央フリジ契丹国惕隠司季父房秦王帳兼中書令開国公王寧墓誌》, 오타케의 《Oŋγʊň Gaw-šib 영공묘지명令公墓誌銘[GAW]입니다.

 

𘰯poor열.f 𘲧döl일곱.f 𘲐𘰍ay-nd해(f)-dat 𘱥𘱤𘮰kiing 𘬥𘱊šəng 𘰦𘲚duuL 𘱚𘬛𘱫giwngʷ 𘯩𘱳šııL使 𘮧𘯶𘰽booľ-ľ되다-cnj 𘰯poor열.f 𘬌ňeem여덟.f 𘲐𘰍ay-nd해-dat 𘬜𘰹𘱆yʊγʊy다시 𘱄𘱤𘬚liintn 𘱚𘱆𘰕guy-ň??-cond 𘲳𘰴𘰕uǰədiň안의.pl 𘱀𘰷𘲦əm-z-ən지방-pl-gen 𘲜𘰣𘱚𘰷mirgəz발해의(?).pl 𘬓𘰫χʊrʊʊ통솔자 𘰠𘬜𘲆□???

(중희重熙) 17년에 흥성도궁사가 되고 18년에 다시 Liin ××하니 내지의 발해(?) 도통 ×× …

《야율고십영공묘지명》 제16행 발췌

 

아마도 발해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𘲜𘰣𘯟𘮒 mirgʊr는 《야율결묘지명耶律玦墓誌銘(1071년)에 단 한 차례 문증됩니다. 아이신교로는 《대중앙호리지거란국고좌룡호군상장군정량공신검교태사지연욱창온묘지大中央フリジ契丹国故左龍虎軍上將軍正亮功臣檢校太師只兗昱敞穏墓誌》라고 부르는 자료입니다.

 

𘱕𘭦ünaǰpn 𘮽𘯡baz 𘱤𘰣iir이름 𘱽𘯺𘮢𘲦ǰaraaň-ənpn-acc 𘮛𘱀kəəm칙명 𘭖𘱚bidəg 𘯴𘱦am-əər??-inst 𘬥𘳍𘮅𘭂𘯺𘮢šäğal-ağ-aaň기리다-pass-pst.f 𘲜𘰣𘯟𘮒mirgʊr발해(?) 𘱆uy 𘱘ňay신하 𘰷𘭕𘭢səw-əəl??-sml 𘲭...neg 𘭗𘱄𘭂𘯺𘮢aľ-lağ-aaň얻다-caus-pst.f

Ünaǰ 다른 이름 J̌araaň을 칙서 ××으로써 칭송하였다. 발해(?) 일을 맡은 관리는 ××하면서 얻게 하지 않았다.

《야율결묘지명》 제34–35행 발췌

 

거란의 충신이었던 야율결耶律玦이 열세 차례나 관직을 받았다는 내용 다음에 나오는 이 문장은 연구자들에 의해 다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𘲜𘰣𘯟𘮒 mirgʊr가 정말로 발해를 의미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발전된 연구를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또한 우잉저 외(2017)의 색인에 따르면, 𘲜𘰣𘯗𘱤 mirgii의 또 하나의 용례가 《한씨부인묘지비명韓氏夫人墓誌碑銘(1078년) 제4행 다섯 째 글자로 문증된다고 합니다만, 마멸이 심하여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류펑주의 《소특매·활가부마제이부인한씨묘지명蕭特每・闊哥駙馬第二夫人韓氏墓誌銘》, 아이신교로의 《특면곽가부마차처갈로리부인묘지비명特免郭哥駙馬次妻曷魯里夫人墓誌碑銘》, 지스의 《갈로무리묘지曷盧無里墓誌》, 오타케의 《Dəməəň Goo-gəə 부마처駙馬妻 Χaruur 부인묘지명夫人墓誌銘[XAR]입니다. 가까운 시일에 직접 고화질 탁본을 들여보며 다시 확인해볼 계획입니다.

참고자료

  • 愛新覚羅烏拉熙春・吉本道雅(2011)『韓半島から眺めた契丹・女真』京都大学学術出版会
  • 大竹昌巳(2016)「契丹語形容詞の性・数標示体系について」『京都大学言語学研究』35:59–89
    • (2018)「契丹語を俯瞰する」AA研共同利用・共同研究課題「モンゴル諸語における言語変容」2018年度第2回研究会
    • (2020)『契丹語の歴史言語学的研究』京都大学博士学位論文
  • 陶金(2023)〈契丹大字“彌里吉”與渤海國〉《隋唐遼宋金元史論叢》1:220–234
  • 卽實(2012)《謎田耕耘:契丹小字解讀續》遼寧民族出版社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