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위한 초상화 (2016)
브라질의 영화 감독인 페드로 니시가 2016년에 제작한 《Retratos Para Você》(영문: Portraits for you, 중문: 有一個地方,只有我們知道)는 언젠가 누군가의 소개로 인상깊게 본 10분 남짓의 짧은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중국 베이징사범대학 중국문화국제전파연구원에서 주관하는 문화 체험 프로그램인 ‘칸중궈看中國’에서 외국인 청년 영화 부문에 출품된 작품으로, 2016년도 ‘최우수 문화 발견상’을 수상했다. 상세는 이곳을 볼 것.
신장新疆 찹찰시버자치현에 거주하는 촬영 당시 7세였던 시버인 소녀 허쥔팅何俊婷을 중심으로 시버 민족문화를 기록한 이 작품은 시버인의 민족 언어인 시버어로 나레이션이 깔려 있어 굉장히 흥미롭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오로지 중국어 자막만이 제공되고 원문 시버어 문장을 확인할 길이 없다는 점이다. 나는 시버어는 물론 만주어 구어 및 문어에 대한 이해가 얕기 때문에 직접 전사를 시도했음에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보지 못했다. 비교적 온전하게 청취한 부분을 일부 싣는다.
“저는 허쥔팅입니다.”
“올해 일곱 살입니다.”
“저는 시버족입니다.”
“저는 신장 찹찰현에 삽니다.”
내 수중에 있는 간이한 시버어 참조문법서 중에 상식적인 형태음운론적 표기를 채용하고 있는 구보 도모유키久保智之 외(2011) 『シベ語の基礎』 및 고구라 노리카즈児倉徳和(2018) 『シベ語のモダリティの研究』에 따르면, /siwe’/ [ʃivɜː] “시버”와 같은 형태가 예상되나 /sibe’/ [ʃibɜː]와 같이 니타나 실현된 것은 흥미롭다. 명백하게 중국어의 영향이리라. 또한 /ani/의 말음은 경구개음 [ɲ]으로 나타날 것이 기대되나, 뒤따르는 /nade/의 초두 자음에 동화되었는지 [n]으로 들린다.
처음 시청하면서 발견했던 옥에티는 간화자를 억지로 정자로 고치는 과정에서 只가 隻로 과도교정된 오류이다. 두 글자는 본래 구분되는 글자인데 간화자에서는 只로 병합되었다. 동물을 헤아리는 양수사로서는 隻가 맞지만, 아래 문장에서는 只가 놓여야 옳다.
모란의 집에 찾아온 봄 (2024)
페드로 니시는 《Spring in Mudan’s House》(중문: 春不遲,重逢自有時)라는 제목으로 8년만에 후속편을 냈다. 여전히 나레이션은 시버어로 되어 있으나, 성장한 허쥔팅(시버어 이름은 “모란”을 뜻하는 무단 mudan임이 새롭게 밝혀짐)은 이전작에서 선보인 시버 민족의 전통 춤을 다시금 선보이면서, 이번에는 중국어와 시버어를 함께 발화하는데 시버어의 비중은 많이 줄어들었다. 8년 전 작품에서 등장한 노부부는 여전히 건강해보이며, 특히 할머니의 노래 실력은 전혀 녹슬지 않았다. 두 작품을 최근에서야 내리 접하게 된 나로서는 뜻밖에 시간여행을 한 기분이 들었다.
연구자에 따라 만주어의 방언이나 계승 언어로 간주되는 시버어는 현재 3만여 명의 화자가 존재하여 절멸해버린 만주어 구어에 비해서는 사정이 조금 나으나, 살짝 뒤쳐져서 마찬가지의 길을 걷고 있을 뿐이다. 만주어 구어는 베이징 방언과 헤이룽장 방언이 또 다른데, 시버어는 얼마나 어떤 식으로 이들과 구분되는지 궁금하다. 이들은 여전히 고전 만주어의 철자법으로 이어져 있다. 언젠가 영상에 나오는 시버어를 온전하게 전사해내는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