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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기타 내륙아시아 제어

시버어 구어 자료로서의 『청어노걸대』

올 3월 3일부터 4일까지 이틀에 걸쳐 {東京外大|도쿄외대} AA{硏|연} 시버·만주언어문화국제회의에서 제14회 시버어 연구회를 개최하였다. 1일차에는 {久保|구보}{智之|도모유키} 교수의 시버어 {同音|동음}{形態素|형태소}를 다룬 발표(시간 문제로 끝까지 발표하지 못하여 아쉽다), 만주어의 {時制|시제} 중심의 체계가 시버어의 {敍法|서법}·{相|상} 중심의 체계로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児倉|고구라}(2018)의 연구를 바탕으로 고찰한 서울대 {朴相澈|박상철} 박사의 발표, 『{庸言知旨|용언지지}』 「{淸語元音|청어원음}」의 기술을 통해 만주어 {口語音|구어음}에 대한 19세기 {初|초}의 인식을 소개한 {竹越孝|다케코시 다카시} 교수의 발표(특히 질의응답)를 이미 충분히 흥미롭게 청취하고 있었는데, 그 다음 발표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키워드를 목격하고는 앞의 연구에 대한 관심은 순식간에 {一掃|일소}되고 말았다. {徐佩伶|쉬페이링} 박사의 발표에서 「시버어 자료 『{淸語老乞大|청어노걸대}』」라는 비현실적인 문구가 예문으로 인용한 문장의 출처로 제시되었던 것이다.

시버어 『청어노걸대』의 성립

웹 검색을 통해 「시버어 자료 『{淸語老乞大|청어노걸대}』」가 실존하는 자료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1990년대에 만주어 연구자 {孔果洛|콩오로}{廣定遠|광딩위안} 교수의 의뢰를 받아 시버족인 {趙蓮英|자오롄잉} 여사가 『{淸語老乞大|청어노걸대}』를 {逐句的|축구적}으로 시버어 구어로 번역하였다. {孔果洛|콩오로} 교수 자신도 {臺灣|대만}으로 이주한 시버족이다.

 

{趙蓮英|자오롄잉}은 1925년에 {新疆|신장} {察布査爾錫伯自治縣|차프찰시버자치현} {第一鄕|제1니르}에서 태어나 {新源縣|신위안현}(당시의 {鞏哈|궁하})에서 자랐으나, 1945년의 {伊犁事變|일리 사변} 이후 {察布査爾縣|차프찰현}으로 돌아왔다. 1990년대에 그녀는 {台灣|대만}의 {孔果洛|콩오로} 교수를 찾아, {事前|사전} 준비 없이 『{淸語老乞大|청어노걸대}』의 만주어 문장을 낭독한 뒤 시버어로 소리내어 번역하였다. 만주어 발음은 명확했고 시버어 번역은 매끄러웠다고 한다. 2014년에 사망했다.

 

해당 {口述|구술} 음성 자료는 오랜 기간 카세트테이프 형태로 {孔果洛|콩오로} 교수가 보관하고 있다가, 최근 {臺灣|대만} {淡江大學|담강대학}의 {徐佩伶|쉬페이링} 박사가 이들을 {電子化|전자화}하여 텍스트 {轉寫|전사} 작업을 진행하였고, 최종적으로 『{淸語老乞大|청어노걸대}』 만주어 원문과 시버어 {口語|구어}로 구성된 병렬 코퍼스 형태로 가공하였다. 시버어 자료 『{淸語老乞大|청어노걸대}』는 시버어 구어 코퍼스로서 상당한 참고 가치를 지니는데, 현대 시버어는 {言文|언문} 간의 괴리가 상당히 커서 {文語|문어}가 {口語|구어}의 실상을 반영하지 못함에도 불구, 일반적으로 공개된 시버어 자료는 그 대다수가 {東|동}튀르키스탄 제1공화국 시기에 정비된 이래의 시버어 {文語|문어}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대화 형식으로 작성된 『{淸語老乞大|청어노걸대}』은 총 여덟 권 아흔일곱 화로 구성되는데, {徐佩伶|쉬페이링}에 의하면 {口述|구술} 음성 파일은 다섯 시간을 훌쩍 넘기는 분량이라고 한다. 전사 방식은 기본적으로 일본에서 통용되는 합리적인 형태음운론적 표기를 채택하였다. {徐佩伶|쉬페이링}(2023) 보고서에 제시된 병렬 코퍼스 예문을 제시한다. {仝|동} 코퍼스에서 매겨진 {編號|편호}는 생략하였고, 시버어를 기준으로 달린 글로싱은 한국어로 고쳤으며, 일부 {略語|약어}를 {児倉徳和|고구라 노리카즈}(2018)의 방식으로 수정했다.

 

(1) 滿  sisi2sg ereere biyaibya=i달=gen icedeice=de새롭다=dat jurafi,tuci-maqe,출발하다-cvb

「내 이ᄃᆞᆯ 초ᄉᆡᆼ에 ᄯᅥ낫노라」

(2) 滿  tete지금 hūntohūnχoNχu byabya hamikaχamyaqe엇비슷하다 bime,bi-me↑,aux-cvb

「이제 거의 반ᄃᆞᆯ이어ᄂᆞᆯ」

(3) 滿  ainuaN어찌 teniteni’비로소 ubadeewa=de이곳=dat isinjiha.isine-me도착하다-cvb  ji-Xe=i↑오다-pfv=mod

「엇지 ᄀᆞᆺ 여긔 온다」

 

{徐佩伶|쉬페이링}(2024) 보고서에서는 음성 파일을 분석하도록 돕는 소프트웨어인 ELAN을 활용하여 병렬 코퍼스를 생성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이러한 작업을 통해 얻어진 성과를 소개한다. 해당 보고서의 부록에는 코퍼스에서 추출한 어휘 목록을 제시하여 일종의 간이 대역어휘집으로 이용할 수 있게끔 하였다. 이전까지 시버어 구어를 유의미한 형태로 제시하는 어휘집은 {久保|구보} 외(2011)『{シベ語|시버어}{語彙集|어휘집}』이 사실상 유일했다. 또한 부록에 병렬 코퍼스에 정비된 여덟 문장을 추가로 제시하지만, 번거롭기에 이곳에 옮기지는 않겠다.

쉬페이링(2024) 보고서에 첨부된 ELAN 소프트웨어 스크린샷

시버어 음운론의 기초 지식

{我國|아국}에는 만주어 {文語|문어}에 익숙하면서도 만주어 {口語|구어}와 시버어에 대해서는 전혀 무지한 독자가 많을 것이므로, 이 글에서 시버어의 형태음운론적 표기에 관하여 간소하게 설명해둔다. 다음의 기초적인 생성음운론(단, 규칙 기반의 전통적인 음운론) 이론을 숙지하고 있을 것을 전제로 한다.

/기저형/ → 음운 규칙 → [음성형]

 

예측 가능한 변이음까지 무분별하게 건져내 지저분하게 음소를 설정하고 있는 중국 학계와 달리, 일본 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i/, /e/, /a/, /o/, /u/의 다섯 가지 모음 음소를 인정한다. 자음 음소의 나열은 생략한다. 파열음 및 파찰음은 [±voice] 대립이 존재한다. 저해음은 어말에서 무성음화한다. 만주어에서는 연구개음과 구개수음의 대립이 비교적 제한적으로 나타나지만, 시버어에서는 모음 /i/ 앞을 제외하면 전부 변별된다. 마찰음은 [±voice] 대립이 없고 공명음 사이에서 유성화한다.

 

[+high] 자질을 보유하는 모음, 즉 /i/, /e/ (완전한 고모음은 아니나 상당히 높게 실현되는 경우가 있음), /u/는 어말 및 무성 자음 앞에서 탈락한다. 단, 단음절어 및 {中平|중평} 인토네이션 환경에서는 탈락하지 않는다. 예컨대 예문 (2)의 시버어 구어 부분의 te는 徐佩伶(2023)에 te’라고 되어 있으나, 단음절어의 모음은 어말에서 탈락하지 않으므로 아포스트로피는 불필요하다. 이 외에도 예외적으로 모음 탈락이 발생하지 않는 일부 어휘에서 모음은 /V’/와 같이 표기된다. 이러한 규칙 설정은 다음과 같은 이점에 기반한 것이다.

 

{李樹蘭|리수란} 외(1984)는 시버어 「사다리」「사람」을 각각 van [vãː~van], nan [nan]으로 표기한다. 그러나 이들은 예컨대 {對格標識|대격 표지}가 부가될 경우 각각 [vaɱf~vaɱvɜː], [nanɜf~nanɜvɜː](각각의 음성형에서 나중에 제시된 것은 중평 인토네이션일 때의 실현임)와 같이 실현된다. 「사람」의 경우 어말에 감춰져 있던 /e/가 대격 표지의 부가를 통해 표면에 드러난다. 때문에, {久保|구보}나 {児倉|고구라}에 의한 형태음운론적 표기에서는 각각 /waN/, /nane/, 대격 표지가 부가된 꼴은 /waN=we/, /nane=we/로 표기하며, 이 방식은 표기의 체계성과 예측가능성의 측면에서 중국 언어학계 특유의 IPA 음성 전사 {一邊倒|일변도}의 방식보다 우월하다.

 

소략하고 조잡한 설명이 되었으나 이해를 위한 최소한의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 보다 상세한 해설은 {久保|구보} 외(2011)와 {児倉|고구라}(2018)를 참고할 것.

결어

{徐佩伶|쉬페이링}은 벌써 해당 코퍼스를 활용하여 시버어의 양화 부사 gemu에 관한 연구와 속격 주어(국어학에서 말하는 주어적 속격)에 관한 연구를 일본에서 발표하였다. 카세트테이프의 특성 상 음질이 좋지 못하여 청취가 곤란한 부분이 있다는 한계가 있으면서도, 처음으로 「진정한」 시버어 구어를 반영한 만주어·시버어 병렬 코퍼스가 정비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녀의 작업은 획기성을 지닌다. 향후 『{淸語老乞大|청어노걸대}』 여덟 권 분량의 {口述|구술} 음성 자료가 모두 텍스트로 정비되어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된다면, 해당 {譯學書|역학서}에 관한 연구가 축적되어온 국내 학계에서 지금보다도 시버어 연구를 활성화하는 하나의 촉진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참고 자료

久保智之・児倉徳和・庄声(2011)『シベ語の基礎』東京外国語大学AA研

徐佩伶(2023)「滿語錫伯語平行語料之比較硏究―《淸語老乞大》之錫伯語口語對譯語料」NSTC補助專題硏究計劃報告

___(2024)「以《淸語老乞大》滿錫平行語料爲本之錫伯語詞彙整理及對照分析」

児倉徳和(2018)『シベ語のモダリティの研究』勉誠出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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