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25일, 중국 간쑤성 톈주 티베트족 자치현 소재의 무덤에서 좌면에 가설적인 토욕혼吐谷渾 문자가 새겨진 묘지명(7세기 말?)이 발견되었습니다. 묘주는 토욕혼 왕국의 마지막 왕인 모용낙갈발慕容諾曷鉢의 삼남 모용지慕容智입니다. 토욕혼어는 선비·몽골어족 선비어파에 속하는 사멸한 언어로, 고유명을 포함한 몇 가지 단어와 단편적인 기록 외에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습니다. 선비족의 일파인 모용부가 서역에 세운 국가인 토욕혼은 서기 663년에 토번吐蕃에 의해 멸망하였습니다. 그런데 《모용지 묘지》에서 토욕혼 문자로 여겨지는 수수께끼의 한자계 문자가 새겨진 것이 확인되면서, 약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 묘지명에 새겨진 것이 정말로 토욕혼 문자로 적힌 토욕혼어라면, 이미 선비어파 중에서 거란어에 이어 두 번째로 언어 자료가 많았던 토욕혼어는 자국의 문자로 자국의 언어로 표기한 기록을 남긴 것이 확인된 두 번째 선비어파 언어가 됩니다.
토욕혼은 두 종류의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나는 토욕혼의 시조로 여겨지는 모용토욕혼慕容吐谷渾의 이름에서 유래하는 吐谷渾 thuX yowk hwon으로, 고대 티베트어 자료에서는 ཐོ་གོན་ thogon으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티베트어에서 더 일반적으로 사용된 호칭은 འ་ཞ་ ‘azha였으며, 한문 자료에서 대응되는 단어는 阿柴 'a dzrea로 나타납니다. 여담으로 13세기 《원조비사元朝秘史》에 몽골의 서하西夏 원정에 대항한 서하의 장군으로 등장하는 아사감부阿沙敢不의 성씨인 阿沙 aša가 토욕혼을 의미한다고 여겨집니다.
《위서魏書》에는 북위의 탁발선비가 일찍이 1천여 자로 구성된 독자적인 문자 체계를 고안했음을 시사하는 구절이 있고, 한적漢籍을 선비어로 번역하라는 명을 내렸다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저는 앞선 기사 〈거란어의 “쌍두사 문제”와 고대 한국어 어휘 차용〉에서 창제 시기가 서기 920년으로 알려진 거란대자의 원형이 실제로는 그보다 이전에 이미 존재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는데, 《모용지 묘지》의 토욕혼 문자는 선비계 민족이 일찍이 독자적인 문자를 창제하여 자국어 표기에 사용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실증적인 자료입니다.
초보적인 해독 시도
토욕혼 문자를 처음 보고 깨달은 특징은, 한자를 통해 익숙한 나라국몸 囗, 하늘천변 天, 사람인변 亻, 입구변 口, 책받침 辶 등의 부수와 형태가 같거나 닮은 단위체가 반복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토욕혼어에 대한 정보가 매우 부족한 상황에서, 토욕혼 문자는 한자계 문자로 보이는만큼, 이것이 부수를 활용한 한자의 조자 원리를 모방한 문자 체계라고 가정하여 초보적인 해독을 전개합니다. 부수의 적극적인 활용은 토욕혼 문자가 완전한 표음문자 체계가 아닐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첫 두 글자는 생김새가 비슷하지만 가로 한 획 차이로 서로 구별되며, 육서 가운데 회의會意의 원리로 만들어진 글자로 보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거란소자 자료에서 “황제”를 의미하는 거란어 단어의 표기 𘭝 𘬮 χoŋγʷ tii에 멀경몸 冂을 씌운 형태와 닮았다는 사실입니다. 10세기 초에 창제된 거란소자가 오래된 선비 문자, 혹은 적어도 토욕혼 문자를 일부 계승하였다고 가정하면, 이 두 글자는 “황제”의 의미라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멀경몸 冂 대신에 나라국몸 囗으로 간주하고 𘭝 𘬮에서 가로획 하나만큼 결여된 꼴로 본다면, “황제국”을 의미하거나 적어도 토욕혼 왕국의 자칭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한문이든 거란어이든 묘지명의 모두冒頭 부분은 국명으로 시작한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모용지 묘지》의 첫 두 글자는 “황제”보다는 토욕혼 왕국의 자칭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토욕혼어에 대해 알려진 것은 근소하나, 형성자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 두 글자를 *toy[ʁ/g]on이나 *aǰa 같은 단어의 표기(문자소 경계는 불명)로 잠정하고자 합니다.
그 다음으로 주목할 가치가 있는 부분은 좌변에 天을 공통으로 가지고 우변에 각각 大과 人를 갖는 연속되는 두 글자입니다. 저는 자명한 이유로 이 두 글자가 “황제” 혹은 “왕”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토욕혼의 왕호가 돈황 사본 《IOL Tib J 1368》에서 티베트 문자 ཁ་གན་ khagan으로 전사되었으므로, 잠정적인 *qaʁan(문자소 경계는 불명)을 제시하겠습니다. 이 두 글자 역시 회의의 원리로 만들어진 것으로 간주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회의의 원리로 성립한 것으로 추정되는, 좌변에 亻와 우변에 爪처럼 생긴 요소로 구성된 글자가 나타내는 의미가 “삼남”이라고 가정한다면, 이것과 잠정적인 “황제” 사이의 문자열은 모용낙갈발, 혹은 그의 존호에 해당하는 단어가 들어갈 자리여야 합니다. 흥미롭게도, 잠정적인 “삼남” 바로 앞의 세 글자가 모두 입구변 口을 포함하며, 아마도 3음절로 된 ‘낙갈발’을 표음적으로 나타낸 표기일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아니면 저 세 글자로 ‘모용낙갈발’ 전체를 대표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연속적인 입구변 口의 사용은 아마 본래 표의·표어적인 글자를 표음적인 용법으로 사용하고자 한 의도를 의미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토욕혼 문자에서 무표적인 유형의 글자는 표의·표어적이라고 가정할 수 있습니다. 가령 이 세 글자가 ‘낙갈발’을 의미한다면, 잠정적인 “황제” 사이의 세 글자는 ‘모용’을 의미할까요? 이 세 글자가 ‘모용낙갈발’ 전체를 의미한다면, 세 글자 중 얼만큼이 ‘모용’에 해당하는지는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요? 토욕혼 문자의 각 글자가 대표할 수 있는 소리의 단위에 대해서 알려진 정보가 전무하기 때문에 이러한 판단을 내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입구변 口을 포함하는 上와 포함하지 않는 上의 관계는 해독의 실마리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잠정적인 “삼남” 뒤에는 모용지의 이름에 해당하는 智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지만, 智는 아무래도 한화 인명처럼 보이므로, 거란어 묘지명의 형식대로 사고하면 모용지의 토욕혼어 이름이 나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인명은 智와 의미상 대응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좌변에 丩처럼 생긴 요소와 우변에 キ처럼 생긴 요소로 구성된 글자는 《모용지 묘지》에 총 두 번 나타납니다. 한 번은 잠정적인 토욕혼 왕국의 자칭 뒤에, 다른 한 번은 모용지의 이름으로 여겨지는 글자(들) 뒤에 등장합니다. 우변 요소는 첫 글자에서 나라국몸 囗 안에도 나타나는데, 관련성은 알 수 없습니다. 이 글자가 회의의 원리로 만들어졌다면 한자를 통해 유추하기 어려운 좌변의 丩가 가진 의미를 짐작해야 합니다. 우변 요소는 잠정적인 토욕혼 왕국의 자칭의 첫 글자에 나타나는 단위체와 일치하므로, 이 글자는 형성의 원리로 성립된 글자는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같은 글자가 하나는 국명 뒤에, 하나는 인명 뒤에 나온다는 사실은, 관직이나 호칭의 일부일 가능성을 시사하나 판단은 곤란합니다.
제2행의 첫 네 글자는 시각적 유사성으로 미루어볼 때, 날짜와 관련되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듭니다. 그 바로 다음 글자의 형태가 거란대자에서 “해年”을 의미하는 ay와 닮은 것처럼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니므로, 이러한 가설을 취하면 이 네 글자는 십간과 십이지의 조합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거란대자의 원형이 요대遼代 이전에 이미 존재했다면, 토욕혼 문자와 거란대자의 적극적인 비교는 시도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론
《모용지 묘지》에는 거란대자 ‹baγ›, 거란소자 𘰻 ‹ərd› 등 10세기에 창제된 거란문자와 닮은 글자들이 간혹 나타나는데, 한자계 문자에서 발생할 수 있는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실제로 거란문자와의 계통 관계를 시사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모용지 묘지》를 통해 거란문자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선비계 민족과 북중국 정복왕조의 독자 문자 창제의 전통이 더 앞당겨질지도 모릅니다. 향후 더욱 상세한 연구가 진행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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