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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고

비파괴 북스캔 경험을 극적으로 개선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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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처럼 역사비교언어학을 취미로 갖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은 늘 더 많은 자료를 손에 넣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다양한 자료를 손에 넣게 되면 그만큼 풍부한 취미 생활이 가능해집니다. 서울 소재의 국립중앙도서관, 도쿄와 교토 소재의 국립국회도서관, 아니면 소속된 기관의 도서관에 가면 대체로 원하는 자료는 다 손에 들어옵니다. 물론 큰 도서관에 간다고 해서 모든 자료가 있는 게 아닌지라, 저는 아이신교로 울히춘 교수의 몇몇 저서를 수 년째 찾고 있지만 아무런 진전이 없는 상태입니다.

 

읽고 싶은 책과 논문을 찾기 위해 도서관을 방문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당연한 일일까요? 현대 사회에서 궁금한 것, 잘 모르는 것을 찾아보기 위해 사람들이 이용하는 가장 보편적인 매체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와 생성형 인공지능 모델입니다. 우리는 타이핑 몇 번으로 손쉽게 원하는 정보를 취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문학 분야에서 더 중요하고, 더 심화적이고, 더 원천적인 정보를 수록하는 경향이 있는 전통 매체에 대한 접근성은 여전히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고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오래 전에 출판된 자료가 그렇습니다. 학술적인 정보는 인터넷에서 접근하기 여전히 어렵습니다.

 

이제 저와 같은 취미가들은 학술서, 연구서를 집에서, 혹은 이동 중에 전자 기기를 통해 읽고 싶은 욕구가 아주 강하다는 사실이 짐작 가실 것입니다. 이동 중에 두껍고 무거운 학술서를 ‘합법적’으로 읽으려면, 우선 그 책을 구입한 뒤, 어떠한 방식으로든 책을 전자화하여 pdf 파일로 가공해야 합니다. 또 OCR 기술을 활용하여 검색 가능한 파일로 만든다면 더욱 편리합니다. 결국은 한때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크게 유행했던 북스캔으로 이어집니다. 2022년부터 제가 수없이 조사하고 고민한 ‘비파괴 북스캔’에 관한 정보를 독자 여러분께 공유하는 것이 이 글의 취지입니다.

파괴 북스캔과 비파괴 북스캔

북스캔은 스캔 방식에 따라 크게 파괴 북스캔과 비파괴 북스캔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파괴 북스캔은 가장 인기 있는 방식입니다. 작두로 책등과 풀칠된 부분을 잘라 완전히 낱장으로 분리된 종이들을 스캐너에 집어넣으면 순식간에 자동으로 고품질 결과물이 완성됩니다. 그러나 제본 관련 지식이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업자에 맡기지 않는 이상 파괴된 책을 복구하기 어렵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전자화를 마친 책은 그냥 버리게 됩니다.

 

압도적으로 빠르고 편리한 파괴 북스캔보다 저는 비파괴 북스캔을 선호합니다. 고가의 학술서를 영구적으로 망가뜨리는 것은 영 내키지 않습니다. 비파괴 북스캔의 특장점은 책이 파괴되지 않는다는 것 말고는 없습니다. 대신 단점은 현저합니다. 수동으로 스캔할 경우 시간과 노력이 상당히 많이 들고, 또 그렇게 나온 결과물의 품질이 일반적으로 그다지 좋지 않다는 점입니다. 또한 비파괴 스캔의 경우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파괴 스캔의 경우 요즘은 그냥 업자에 맡기면 합리적인 가격으로 몇 분 안에 작업이 끝납니다. 그런데 비파괴 스캔의 경우 업자에 맡기게 되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기 마련이고, 직접 하려고 해도 장비 값이 만만치 않습니다.

전문가용 비파괴 스캔 장비

십 만원, 심하면 수십 만원의 학술서를 작살내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업자에 맡기게 되면 쪽수가 많아서 매번 고가의 비용이 청구되니 그것도 마땅치 않습니다. 고가의 책을 비파괴 스캔하는 합리적인 해답은 결국 ‘셀프 스캔’이 유일합니다. 셀프 비파괴 스캔은 장비를 필요로 합니다. 장비는 일반인용으로 나온 것과 전문가용으로 나온 것에 따라 크기와 가격이 천차만별입니다. 또, 아주 유용해보이는 장비의 대부분은 DIY로 직접 제작해야 하여 관련 지식이 필요합니다. 고품질의 결과물을 내는 장비는 스캔 방식에 따라 세 가지로 다시 나눌 수 있습니다.

  • 자동
    • Treventus ScanRobot® (약 1억원)
    • Qidenus Robotic Book Scanner (약 5천만원)
    • SMA ROBO SCAN V2
    • 이시카와그룹연구실 BFS-Auto (비매품)
    • Linear Book Scanner (DIY, 품질 낮음)
  • 반자동 (페이지 넘김은 수동)
    • Qidenus Mastered Book Scanner
    • Image Acess Bookeye® 제품군의 Automatic & Semiautomatic
  • 수동
    • Qidenus Smart Book Scanner
    • The Archivist
    • 기타 각종 DIY 스캐너

아쉽지만 위에 제시된 비파괴 스캐너를 일반인이 사비로 구입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목공 솜씨가 좋은 사람은 The Archivist 정도는 재료를 구입해서 만들어볼만 한데, 저는 감히 시도할 수가 없었습니다. 2012년에 Google 엔지니어가 고안한 Linear Book Scanner는 전자동 방식임에도 불구하고 100만원 내외로 DIY로 제작할 수 있는데, 대단히 흥미로운 방식의 기계장치이지만 높은 확률로 종이가 찢겨나가는 안정성 문제, 이미지가 일그러지는 스캔 품질 문제 등 다양한 결함이 아직 해결되지 못하여 상용화되지 못했습니다.

 

 

일반인이 현실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비파괴 스캐너는 스탠드처럼 생긴 오버헤드형 스캐너가 고작입니다. 현재 대만의 CZUR사에서 나오는 오버헤드형 스캐너 제품군과 일본의 후지쯔사에서 나오는 ScanSnap SV600 모델이 가장 인기있는 선택지입니다만, 사용자의 반응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오버헤드형 스캐너의 문제점

저는 후지쯔 ScanSnap SV600 개선 모델을 보유 중인데, 대다수의 사용자의 반응에 동감할 수 있습니다. 책장을 한 장씩 넘기고 스캔 버튼을 누른 뒤 3초씩 기다리는 행위를 한참 반복해야 하는 단순노동은 그나마 낫습니다. 오버헤드형 스캐너의 특징인 ‘왜곡된 이미지’를 후처리를 통해 보정하는 과정은 더욱 좌절스럽습니다.

 

Vflat과 같은 스마트폰 앱으로 북스캔을 해보신 분은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Vflat도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최근에 나온 서비스인만큼 적어도 ‘쓸만한’ 앱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Vflat은 스마트폰으로 빠르게 간이적인 pdf 스캔 파일을 생성하는 데 적합합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스캔은 스마트폰 이외의 장비가 필요합니다. 후지쯔 ScanSnap SV600을 사용해본 제 경험에서 가장 좌절스러웠던 부분은 후보정입니다.

 

후지쯔의 후보정 소프트웨어는 한 번 아다리가 들어맞으면 잘 작동합니다. 이 경우 거의 손을 대지 않고 자동으로 왜곡이 해소된 pdf 파일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2013년에 처음 개발된 제품인만큼 지속적으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제공하고 있음에도 불구, 책의 높이가 너무 높거나, 스캐너 본체에 너무 가까이 위치하는 등 사소한 차이에도 자동 보정이 들어가지 않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에, 소프트웨어 내에서 수동으로 왜곡 보정을 해줘야 합니다. 소프트웨어가 불편하지는 않지만, 수백 페이지를 수동으로 보정하다 보면 짜증이 나서 더 이상 스캐너에 손이 가지 않게 됩니다. 더욱이 수동 보정의 결과물은 높은 확률로 한심합니다.

대표적인 오버헤드형 스캐너 모델

 

CZUR사의 오버헤드형 스캐너는 이용해본 적이 없으나, SV600과는 왜곡 보정 방식이 다소 다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SV600은 스캐너 상단에 밝은 전등이 달린 카메라 부품이 책의 상단에서 하단까지 물리적으로 훑으면서 스캔을 진행합니다. 왜곡 보정은 순전히 이미지 처리 방식입니다. CZUR사의 제품의 경우, 아주 짧은 간격을 두고 책을 두 번 촬영합니다. 단, 첫 번째 촬영에서는 레이저를 조사합니다. 소프트웨어는 이 레이저의 굴곡을 통해 이미지의 왜곡을 보정합니다. 이 방식의 장점은 후지쯔처럼 이미지 보정에 완전히 실패하는 경우가 적다는 점입니다. 다만, 아무리 짧은 간격이라고는 해도, 레이저가 조사된 이미지와 레이저가 제거된 이미지에는 시차가 존재하므로, 보정 결과가 늘 정확하지는 않다고 합니다.

 

여담으로 CZUR M2030-PRO라는 120만원 상당의 하이엔드 고가 제품은 동봉된 V자 크레이들에 책을 올리고 두 개의 렌즈로 각 페이지를 스캔하므로, 보정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것으로 추정되나, 사용해본 적이 없고 작동 장면을 본 적도 없으므로 이 글에서는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스캔 테이블을 활용한 경험 개선

오버헤드형 스캐너의 스캔 결과물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도록 도와주는 제품이 있습니다. 소규모 공방에서 제작하여 판매하고 있는 소위 ‘스캔 테이블’은 책의 굴곡을 최소화시켜 고정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국내에서는 라인카피라는 개인 인쇄 업자가 DIY로 SV600용 아크릴 누름판을 제작하여 간헐적으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15만원 정도에 구입하여 사용해보았는데, 아쉽게도 높이 조절 기능이 없고 너무 두꺼운 책은 스캔할 수 없으므로, 현재는 창고에 방치 중입니다. 웬만하면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쓸만한 스캔 테이블은 두 가지 기능을 갖추어야 합니다. 하나는 아크릴이나 유리와 같은 투명한 소재로 된 누름판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V자 크레이들입니다만, 비용과 부피 면에서 상품성이 떨어지는지 판매하는 공방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다음은 높이 조절 기능입니다. 오버헤드형 스캔은 책의 양면을 동시에 스캔하게 되는데, 이때 책을 정확히 반으로 갈라서 펼치지 않은 이상 양면의 높이는 달라집니다. 오버헤드형 스캐너는 책의 바로 위에서 내려보는 것이 아니라, 비스듬하게 조망하는 방식으로 이미지를 스캔하므로, 원근 왜곡이 상당히 강조됩니다. 따라서 스캔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책의 양면이 최대한 평판형 누름판과 맞닿아 있어야 합니다.

 

 

이 두 조건에 만족하는 제품 중 현재 구입 가능한 것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리스 소재의 Digital Partner에서 판매하는 Apollo Book Adaptor와, 루마니아 소재의 Klip에서 판매하는 Klip Snap이 있습니다. 이 두 제품은 모두 후지쯔 ScanSnap SV600용으로 제조된 것이며, 타사 오버헤드형 제품과 함께 사용해도 문제 없이 기능하는지 확인해보지는 못했습니다. 전자는 가격이 €499에 배송비는 €236이며, 후자의 경우 가격이 €900에 배송비는 €110입니다. 스펙 상으로는 전자가 더 두꺼운 책을 스캔할 수 있고, 또 훨씬 저렴하기 때문에 저는 Apollo Book Adaptor를 구입했습니다. 제조 품질은 좋지 않아서 높이 조절을 위한 핸들을 돌릴 때마다 본체가 마모되어 가루가 나오고, 책을 올려두는 크레이들이 점점 기울어 우측 크레이들은 무게를 받으면 중앙으로 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Apollo Book Adaptor를 적절히 사용하면, 쓸만한 것이 못됐던 SV600의 활용성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가격이 두 배 정도 되는 Klip Snap이 품질과 경험 면에서는 더욱 우수할 것으로 보입니다.

 

SV600의 공식 사양에서 지원하는 최대 두께는 30 mm로 터무니 없이 얇습니다. 스캔 테이블은 SV600이 놓이는 자리보다 낮은 높이에 책이 위치하므로, 아무리 두꺼운 책이라도 스캔 테이블 안에 담기기만 한다면 무리 없이 스캔이 가능합니다. 특히 학술서는 천 페이지가 넘어가는 경우도 있어서 스캔 테이블이 없다면 오버헤드형 스캐너를 활용한 셀프 스캔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DIY의 권유

저는 여건이 되지 않아 시중에 나와 있는 다양한 DIY 스캔 장비를 모방하여 제작하기보다는 이미 완성된 제품을 구매하는 방향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이 분야는 생각보다 매니아가 많습니다. DIY 북스캐너 포럼에는 유용한 정보와 경험담이 지금도 활발하게 공유되고 있습니다. 특히 이 사이트에서 다루어지는 대부분의 DIY 북스캐너는 두 대의 디지털 카메라와 V자 크레이들을 활용하여 최적의 결과물을 낼 수 있는 형태로 수렴해 있습니다. DIY V자 크레이들 스캐너의 최종 진화형이라고 할 수 있는 Archivist는 제작 방법이 상세하게 마련되어 있으며, 유명한 Internet Archive에서도 귀중서를 스캔하는 데 활용되고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은 사용자가 책의 페이지를 넘기고 크레이들을 조작해야 하는 수동 스캐너입니다.

 

Google 엔지니어가 고안하여 몇몇 대학을 중심으로 시제품이 생산된 Linear Book Scanner는 전자동 스캐너이며 작동 방식에 있어서 대단히 흥미롭지만, 지금은 프로젝트가 중단된 것 같습니다. 진공 청소기 등을 부착해서 종이 한 장을 진공으로 흡입하여 페이지를 넘기고, 책은 역V자 크레이들 위에 놓여 본체를 선형으로 왕복합니다. 이때 본체에 부착된 두 대의 막대형 스캐너가 종이면을 전자화합니다. 그러나 위의 포럼에서 본 글에 따르면, 책 페이지가 찢어지는 경우가 잦고, 막대 형태의 스캐너로 빠르게 이동하는 종이면을 훑으면서 스캔하는 구조상, 결과물이 안정적이지 않다는듯 합니다.

 

제가 본 DIY 스캐너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야나기사와 히로시라는 기술자가 설계 및 제작한 Auto page turning Book Scanner입니다. 개인이 만들었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하게 작동하는 이 장치의 작동 방식은 시중에서 1억원이 넘는 가격으로 판매되어 한국의 국립중앙도서관도 네 대밖에 소유하고 있지 않다고 하는 Treventus ScanRobot®의 방식과 흡사합니다. 언젠가 도면과 프로그램이 공개되어 셀프 스캐너와 DIY 애호가들이 참고할 수 있게 되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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