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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고/기행

미야코섬 여행 (2) – 먀군의 푸른 산호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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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코섬 여행 (1) – 프사라 역사·문화 기행

영상 내레이션을 염두에 두고 작성된 글이므로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일본 국내에서도 “요즘 화제의…”라는 수식어가 붙을만큼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는 관광지인 미야코섬

예보대로 아침부터 비가 내렸습니다. 여행 2일차인 오늘은 미야코섬에서 가장 저렴한 교통수단인 노선 버스를 타고 섬의 남쪽 먀군미야구니 지구로 이동합니다. 미야코섬에는 교에이 버스에 의해 관광 버스, 노선 버스, 택시 등의 대중교통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노선 버스의 경우 미야코섬 안에서 달리는 1–5계통과 시모지 공항까지 연결되는 9계통의 총 6가지 노선이 존재합니다. 이 중 제가 주로 탑승한 노선은 5계통 신자토미야구니선입니다. 일본은 교통비가 비싸다는 인식이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미야코섬 내에서 이용할 수 있는 가장 저렴한 이동수단이라는 점은 틀림없습니다.

교에이 버스 5계통

 

숙소 근처 시장 거리 정류소에서 정각 오전 8시 54분보다 3분 정도 늦게 도착한 교에이 5계통 노선 버스에 탑승했습니다. 이 버스를 놓치면 다음 편은 11시 4분에 오기 때문에 15분 정도 여유를 가지고 정류소에서 미리 대기했습니다. 일본의 교통수단은 대체로 정각을 지키는 편이지만, 혹시 정각보다 일찍 출발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함입니다. 미야코섬의 노선 버스는 배차 간격이 보통 두 시간을 훌쩍 넘기기 때문에 렌터카 이용을 강하게 권해드립니다. 많은 업체가 들어와 있어 시모지 공항에서부터 렌터카를 대여할 수 있고, 택시 대절 비용과 비교하면 아주 저렴한 편입니다.

 

운임은 후불제입니다. 앞문으로 탑승하여 먼저 기사님께 목적지를 전합니다. 하차할 때는 운임을 ‘현금’으로 기사님께 직접 지불합니다. 이렇다보니 뒷문은 휠체어나 유모차 등 폭이 넓은 소지품을 가진 승객들만 이용하게 됩니다. 미야코섬의 노선 버스는 관광 목적으로 개설된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운영되고 있습니다. 사실 미야코섬은 자동차 사회이기 때문에 주민들도 노선 버스를 거의 이용하지 않습니다. 3일차에 만난 택시 기사님도 평생 동안 미야코섬에서 버스를 이용한 경험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택시 기사가 버스를 타는 모습이 상상이 안 가기는 합니다만. 아무튼 이용객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보니 시의 보조금으로 운영되고 있는 형편이며, 대부분의 정류소에서 정차하지 않고 승객의 목적지까지 쾌적하게 달리게 됩니다.

우에노 독일 문화촌

20분 정도 걸려서 종점인 우에노 독일 문화촌 정류소에 하차했습니다. 1분 정도 걸으면 독일 국기와 일장기가 내걸려 있는 우에노 독일 문화촌 입구가 나옵니다. 입장료는 없습니다. 안에는 독일풍 건축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비수기인 것도 있지만 사람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는 아닌듯 했습니다. 관람객이 거의 없어서 킨더 하우스 등 일부 시설은 운영되고 있지 않았습니다.

독일 상선 조난의 땅 비

 

도저히 바닷물로는 보이지 않는 투명한 백사장 해변 위에는 ‘독일 상선 조난의 땅’이라고 새겨진 비석이 서 있습니다. 독일 황제가 먀군 주민들에게 감사를 표한지 예순 해가 지난 1936년에 세워진 비석으로, 공작 고노에 후미마로의 글씨가 새겨졌습니다. 현대 일본어에서 독일을 가리켜 부르는 도이쓰가 아닌 한역 표기인 독일獨逸로 되어 있는 점이 시대를 느끼게 합니다. 먀군 지구의 바다는 프사라항에서 본 바닷물보다 한층 투명하고 맑습니다. 이런 한적한 곳에 갑자기 이국의 큰 배가 밤중에 들이닥쳐왔다고 생각하면 마을 사람들에게는 역사적인 거대 사건이었음이 틀림없습니다.

필리핀해가 보이는 해변

 

계곡물처럼 맑고 푸른 바다와 웅장한 독일 건축을 보며 산책할 수 있는 보도가 잘 정비되어 있습니다. 하쿠아이교를 건너면 에메랄드빛의 산호 바다가 넓게 펼쳐집니다. 백사장으로 내려가 물빛을 가까이서 보는데, 마치 산의 계곡물을 보듯이 투명합니다. 미야코섬에는 산과 하천이 없어서, 육지의 토사가 바다로 좀처럼 흘러들어가지 않습니다. 산이 없는 까닭에, 하늘에서 바라본 미야코섬은 유독 납작해보입니다. 백사장에는 작은 게구멍이 많이 보였고, 구멍이 뚫린 뾰족한 바위 위에는 백화된 산호의 시체들이 쌓여 있었습니다. 미야코섬의 하얀 모래사장은 백화된 산호들이 풍화된 결과입니다. 투명한 바다와 하얀 사장은 미야코섬의 자연 환경과 생태계에 원인이 있던 것입니다.

백화된 산호의 시체

 

하트 바위, 시사 바위 같은 해양 관광지 특유의 ‘닮은꼴 바위’도 있습니다만 저는 과감히 패스했습니다. 백사장을 나와서 길로 돌아오면 오랫동안 폐쇄·방치되고 있는 팔레스관이 나옵니다. Google 지도에는 박물관이라고 나옵니다만, 1993년에 완공된 다목적 홀과 회의실, 예수남은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숙박 시설을 갖춘 3층짜리 양관洋館입니다. 그러나 2003년 9월에 태풍 14호, 즉 한국을 강타했던 바로 그 ‘매미’에 의해 심대한 피해를 입어 폐쇄되었습니다. 그로부터 20년도 더 지난 현재에도 매각 문제로 폐쇄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상당히 노후화하긴 했으나 오션뷰가 훌륭한 양관을 마냥 방치하고 있으니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평화의 종

 

다시 다리를 건너 우에노 독일 문화촌의 중심에 오니 섬뜩한 모습을 한 조형물이 있어 읽어보니 ‘평화의 종’이었습니다. 마치 머리를 넣는 곳처럼 둥글게 구멍이 뚫려 있고, 그 밑으로 붉은 녹물이 질질 흘러내린 자국이 있어, 중세 시대에 사용한 기요틴이라도 재현해서 전시해놓은 줄 알았으나, 실은 평화의 상징이었던 것입니다. 그 옆에는 독일연방공화국 수상 내도來島 기념비가 있습니다. 2000년에 독일 제7대 연방총리인 게르하르트 슈뢰더Gerhard Schröder가 미야코섬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19세기 말에 우연히 발생한 독일 상선의 조난 사고가 지금은 양국 간 우호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박애기념관

문화촌 내에서 이 날 운영되고 있던 시설은 박애기념관博愛記念館이 유일했습니다. 이 기념관은 독일 라인강 유역에 위치하는 중세 성 가운데 지금까지 유일하게 전란에 파괴되지 않고 남아 있는 막스부르크Marksburg성을 본따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막스부르크성의 도면을 참고하여 실물 크기 그대로 지어진 건물이라고 하니 꽤 본격적으로 구상된 관광 로케이션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막스부르크성을 본따 지어진 박애기념관

 

허름한 입구에 들어가니 작은 창문 사이로 햇빛이 들어옴에도 중세 특유의 부족한 광량은 확실히 고증된듯 합니다. 그러나 중세 독일에 미닫이식 유리 자동문이 있었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우므로, 입구 바로 앞에 있는 자동문은 관람객의 편의를 위해 설치된듯 합니다. 그 너머에는 다양한 독일 관련 기념품이 진열되어 있었고, 관람객이 없어 지루해보이는 매표소 직원이 있었습니다. 입장료는 성인 기준 700엔. 입구와 연결된 1층은 무료로 구경할 수 있고, 엘리베이터로 이동할 수 있는 다른 전시층은 표를 구입해야 입장할 수 있습니다. 매표소 직원으로부터 동선과 엘리베이터 사용법을 친절하게 설명받은대로 8층→3층→2층 순으로 관람하였습니다.

먀군 앞바다 조감

 

8층에는 전망대가 있습니다. 창문은 안전 관계상 열리지 않았으나, 먀군의 에메랄드빛 바다를 하늘에서 조감하니 또 느낌이 다릅니다. 바다뿐만 아니라 중세 독일풍 건축들도 하늘에서 바라볼 수 있어 눈이 즐거웠습니다. 이곳 문화촌에는 일제시대 조선의 용산역 역사 같은 인상을 주는 건물도 있는데, 아마 후자가 독일이나 그 일대의 양식에 영향을 받아 설계된 게 아닐까 합니다. 바다 반대편에는 논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독일 상선이 난파했을 당시에 화톳불을 켜고 달려온 주민들의 대부분은 농사를 짓던 농부가 아니었을까요?

 

3층으로 내려오니 중세 독일 문화를 알 수 있는 전시실이 있었습니다. 독일인들이 유별난 애착을 가지고 있는 라인강 일대의 풍경을 묘사한 미술 작품과 막스부르크성의 도면 등 예술품을 시작으로, 현대인 입장에서는 터무니없이 크고 무거운 1920년대 여행용 트렁크 등 과거의 여행 용품도 실물 크기 그대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독일인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구역에서는 독일을 대표하는 맥주 브랜드와 배럴 통, 저울과 빨래 탈수기, 과거 침실의 모형 등 지금 제가 묵고 있는 숙소보다도 쾌적해보이는 가구들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옆 방으로 건너가면 ‘부인의 방’이 나옵니다. 바깥에서 땔감으로 덥힐 수 있는 이 방은 밤에는 성주가 사용하고, 낮에는 부인의 거처 공간으로 사용되었던듯 합니다. 막스부르크성의 부인의 방은 복도를 돌아 옆 방으로 바로 이동하는 것이 가능했는데, 중세 시대에는 상당히 드물었던 배치라고 합니다. 원목 소재의 옷장과 촛대는 우아한 느낌을 주고, 창가는 건물 외벽으로 돌출되어 있어 편히 앉아서 바깥을 바라볼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침대는 호화로운 커튼으로 가릴 수 있고 화려한 장식이 달린 의류함도 눈길을 끕니다. 실제 성 안의 모습을 본격적으로 재현했는지 기대 이상으로 중세의 분위기를 체감할 수 있습니다.

 

옆 방은 ‘기사의 방’입니다. 갑옷을 거치하기 위한 마네킹이 여러 대 놓여 있고, 창가에는 후기 바로크 양식으로 조각된 포도 농가의 수호 성인 목조상이 비치되어 있습니다. 창문은 부인의 방의 것보다 한층 크고 많습니다. 방 한가운데에는 원탁이 아닌 직사각형의 긴 탁자가 있고, 들어온 문 쪽에는 목재로 나뉜 격자 안에 도끼가 비스듬히 고정되어 있어 눈길을 끕니다.

예배실의 벽화

 

봐도 봐도 끝이 없습니다. 옆 방은 예배실입니다. 요르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나자렛의 예수, 라자로의 소생, 예루살렘 입성, 본티오 빌라도에 의한 심문, 대사제 가야파에 의한 심문,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포함한 신약성경을 묘사한 벽화가 천장에 둥글게 그려져 배치되어 있습니다.

 

3층 전시를 모두 돌아보고 2층으로 내려왔습니다. 2층은 주로 좌초난파한 독일 상선을 테마로 당시의 이야기와 지금의 독일–일본 관계를 전시품을 통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당시 로베르트손호의 선장이었던 에두아르트 헤른츠하임Eduard Hernsheim의 항해 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독일 상선 난파 구조의 이야기’가 그림과 함께 나열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을 아래에 번역해보았습니다.

헤른츠하임 형제의 초상화. 왼쪽이 선장인 에두아르트 헤른츠하임.

 

  1. 타이핀산(=미야코섬) 사람들이 우리 표류민을 대하는 행동은 용기와 박애의 정신으로 가득했다. 우리는 감사와 경애의 뜻을 담아 37일 간에 걸친 타이핀산에서의 이야기를 말하고 싶다. 이 섬에는 박애로운 사람들이 있다.
  2. 1873년 7월 9일. 어제부터 바람이 거세고 기압도 점점 내려간다. 태풍에 조우했다. 폭풍은 밤까지 이어져, 우리는 목숨을 건 피난 작업을 진행했지만 최악의 결과가 기다리고 있었다. 행방불명자가 두 명, 그리고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선원이 부상을 입었다. 배도 돛대와 키를 잃어 표류를 면할 수 없다.
  3. 1873년 7월 12일. 배는 종일 표류하여 어제 좌초했다. 구명선으로 탈출을 시도했으나 좌절. 절망의 밤, 우리는 불빛과 사람의 그림자를 보았다. 아침이 되자 만조를 기다려 섬사람들의 카누가 다가왔다. 모래밭에는 의사도 대기하고 있어 극진히 보호받았다. 우리는 살았다.
  4. 1873년 7월 21일. 섬사람들에게 구해진지 열흘이 지났다. 친절한 대응에 마음도 가라앉고 상처도 서서히 낫고 있다. 말도 조금은 통하게 되었다. 틈나는대로 책상과 의자를 만들었다. 섬사람들은 바닥에서 식사를 하는 풍습이 있지만 우리는 앉아서 먹고 싶다. 식사가 맛있게 느껴진다.
  5. 1873년 7월 24일. 난파 침몰한 배의 수색도 끝나, 우리 곁에 몇몇 태짐이 남았으나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숲에서 산비둘기를 발견했다. 그곳에서 물에 잠긴 총을 수리하고 사냥에 나선다. 감시역을 맡은 섬사람은 난처한듯 했지만 묵인해주었다. 산비둘기를 여섯 마리 잡았다. 훌륭한 저녁 식사가 기다리고 있다.
  6. 1873년 8월 2일, 세 명의 관리가 좋은 소식을 가져왔다. 곧 커다란 범선이 온다. 그 배를 타고 오키나와 본섬에 갈 것인지, 우리들이 조종하여 중국에 향할 것인지 정해달라는 것이었다. 우리들은 중국에 가기로 했다. 곧바로 조종 연습을 시작할 셈이다.
  7. 1873년 8월 10일. 며칠 전, 우리는 낙마 사고로 다쳤다. 범선 연습도 순조롭기에 하루 빨리 출항하고 싶지만 상처가 낫지 않으면 허가가 떨어지지 않는다. 이것도 섬사람의 친절한 마음이리라. 그들과 해안에 나가 커다란 야자나무에 이름을 새겼다. 분명 기념이 될 것이다.
  8. 1873년 8월 17일. 드디어 출항일이다. 범선은 우리가 주문한대로 개조되었다. 덕분에 타이완까지의 여행은 쾌적할 것이다. 어젯밤 늦게까지 이별을 아쉬워한 사람들이 손을 흔드는 사이, 배는 큰 바다로 떠나간다. 타이핀산과 박애의 사람들에게 작별.
  9. 1876년 7월 22일. 귀국 후 이 사건을 독일제국에 보고했다. 그 결과, 황제 폐하께서 유구국에 기념비와 사례품을 보내기로 하셨다. 섬사람들의 용기 있는 행동, 고상하고 사심 없는 박애 정신이 영원히 계승되어 전해지기를 나는 희망한다.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일본의 만화와 소설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당초 로베르트손의 항로는 중국 푸저우에서 출발하여 호주를 향하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태풍의 영향으로 방향이 어긋났고, 아마도 구로시오 해류의 영향으로 북서쪽으로 배는 표류한 것으로 보입니다. 구로시오 해류는 전근대까지 타이완섬과 류큐제도를 지리적으로 분리하는 보이지 않는 장벽 역할을 해왔습니다. 제 억측일 수도 있습니다만, 미야코 열도와 야에야마 열도는 타이완섬에 아주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언어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일본 본토에 더 가까운 배경에는 구로시오 해류가 있을 것입니다.

독일과 일본 국기

 

2층에는 이 외에도 로베르트손호의 모형, 독일 슈뢰더 총리가 미야코섬을 방문했을 당시의 신문 및 기념품, 막스부르크성 모형 등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분명 평화의 상징이어야 하는 장소에 2차 세계대전의 두 추축국 국기가 걸려 있으니 무언가 잘못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만, 지금은 두 나라 모두 평화를 지향하는 세계 경제규모 3위, 4위를 다투는 선진국입니다. 성하면 독일, 독일하면 성입니다만, 라인강 유역의 성들을 모형을 통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일본 역시 성으로 유명한 나라입니다. 물론 건축 이야기입니다.

 

기념관을 나오니 다행히 비는 그치고 슬슬 허기가 져 식사할 곳을 찾는데 마땅치 않았습니다. 기념관 맞은편의 스테이크 하우스는 휴업 중이었고, 오전에 문화촌 내에 운영되고 있는 음식점은 없어보였으므로 바깥에 나가기로 했습니다. 스테이크 하우스 옆에는 숙박 시설로 보이는 고층 건물이 한창 공사중이었습니다. 시모지 공항과 이라부 대교의 개통과 함께, 미야코섬은 일본 국내에서도 소수만 알던 관광지에서 세계적인 해양 휴양지로 거듭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히로찬 식당 점심 식사

히로찬 식당

 

저보다 수 년 먼저 미야코섬을 방문한 지인이 말하길, 오키나와현에서 노란 배경에 글씨가 검은색과 빨간색으로 적힌 간판이 내걸린 식당은 대체로 신뢰할 수 있다고 합니다. 붉은 글씨가 지워져서 잘 안 보이기는 하나, 마침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히로찬 식당을 발견하여 고민 없이 들어갔습니다.

소민 찬푸루와 바다포도

 

소민 찬푸루와 바다포도를 주문했습니다. 찬푸루는 류큐제도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여러 재료를 넣어서 볶고섞은 요리를 말합니다. 말레이어 campur [참포르]과 일본어 chanpon, 즉 ‘짬뽕’과 관련이 있다고 여겨집니다. 바다포도는 유자향이 나는 폰즈 소스와 함께 나왔습니다. 가격은 관광지 치고는 괜찮은 편으로 소민 찬푸루가 900엔입니다. 소민 찬푸루는 채소와 함께 간장을 넣어 볶은 소면 위에 가쓰오부시가 올려져 있어 예상 가능한 맛입니다. 식탁 위에는 직접 곁들여 먹을 수 있는 각종 소스류가 나열되어 있었는데, 특이하게 생긴 향신료가 제 눈길을 끌었습니다.

유리병에 든 코레구스

 

류큐제도의 전통주인 아와모리에 절여진 작고 매워보이는 남방 고추가 절여진 채로 유리병 속에 담겨 있습니다. 처음 보닌 물건이라 검색해보니 코레구스라고 불리는 류큐제도의 전통 매운맛 향신료라고 합니다. 뚜껑을 열자마자 아와모리의 새콤달콤한 알코올 냄새와 함께 강렬한 매운 맛이 풍겨옵니다. 한국에서는 경험해볼 수 없는 남방 지역 특유의 화끈하게 올라왔다가 이내 사라지는 강렬한 매운 맛입니다. 소민 찬푸루에 한 바퀴 둘러서 먹으니 상당히 잘 어울립니다. 미야코섬 식당의 메뉴판에 적힌 요리 이름이 으레 그러하듯, 코레구스는 실은 미야코어가 아니라 오키나와어입니다.

 

그 어원에 대해서는 분분합니다만, 코레의 어원은 고려高麗라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고, 고려호초高麗胡椒나 고려초高麗草 등의 표기도 존재합니다. 본래 일본에 자생하지 않았던 동식물명에는 그 연원과 관계 없이 당, 고려高麗, 조선朝鮮 등이 접두사로 붙는데, 코레구스도 단순히 바깥에서 온 고추라는 식물을 가공해 만든 향신료이므로 적당히 고려高麗라는 접두사가 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 본토에서도 “고추”를 唐辛子 [도가라시]라고 하는데 직역하면 “당나라 겨자”입니다.

 

미야코섬에 오기 전에 ‘시스카이 하쿠아이’라는 반잠수식 수중 관광선을 미리 예약해두었습니다. 식사를 마쳤는데 시스카이 하쿠아이 호 탑승 집합 시간인 12시 45분까지 아직 한 시간 넘게 시간 여유가 있었기에 식당에 조금 더 머무르기로 했습니다. 그냥 앉아 있으면 염치가 없으므로 간단한 술안주와 우롱차를 탄 아와모리 한 잔을 주문했습니다.

미미가와 우롱차를 탄 아와모리

 

돼지 귀를 얇게 썰어서 참기름이나 된장 등에 무친 미미가라는 술안주입니다. 직역하면 “귀껍질”로 700엔입니다. 콜라겐이 대량으로 함유된 돼지 귀 부위는 쫄깃거려서 씹는 맛이 좋습니다. 미야코섬에 왔는데 그 유명한 아와모리를 안 마셔볼 수도 없어서 우롱차를 탄 600엔짜리 한 잔을 주문했습니다. 주변에 카페와 같은 시간을 보낼 공간이 없어서 최대한 천천히 먹으며 아와모리의 톡 쏘는 맛을 음미했습니다.

하쿠아이항

하쿠아이 어항

 

그럼에도 시간이 남아서 30분 정도 일찍 하쿠아이항에 와버렸습니다. 어업선이 드나드는 하쿠아이항의 물빛도 이상할 정도로 오션블루입니다. 발권을 위해 하쿠아이 시스카이 사무소에 방문했는데 사람보다 먼저 동물들이 저를 반겨주었습니다. 느긋하게 앉아 있던 고양이는 직원이 나오자 안뜰로 도망가버렸습니다. 그리고 오른편을 보는데 다른 직원이 웬 염소 두 마리를 풀어놓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온순한 검은 염소와 사나운 뿔이 달린 하얀 염소가 있었는데, 하얀 염소는 자칫 잘못하면 크게 다칠 수 있으니 조심해달라는 당부를 받았습니다. 미야코섬을 대표하는 가축인 염소를 볼 수 있어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01
미쳐날뛰는 염소와 시큰둥한 고양이

 

여전히 시간이 남아 제가 타게 될 시스카이 하쿠아이 호의 모습을 미리 살펴보았습니다. 평범한 소형 유람선처럼 보이지만 선장실과 선체 뒷부분에 아래 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습니다. 계단을 내려가면 수면보다 아래에 설치된 유리창을 통해 바닷속 생태계를 30여분 동안 관찰하게 됩니다. 총 탑승 시간은 45분입니다. 반잠수식 수중 관광선을 타고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물고기와 산호를 관람하는 것이 오늘 일정의 하이라이트입니다. 미야코섬을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반드시 타볼 것을 추천드립니다. 성인 기준 가격은 2,000엔으로 저렴합니다.

시스카이 하쿠아이 호

반잠수식 수중 관광선

먼저 표를 보여주고 차례로 배를 탑승한 뒤 정해진 지점까지 항행합니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줄을 지어 계단을 타고 아래층에 내려가게 됩니다. 이때 아이를 동반한 가족이 우선 내려가게 되는데, 가이드와 가까운 자리에서 수면 아래를 관람할 수 있습니다. 저는 운이 좋게도 2인석에 혼자 앉아서 갈 수 있었습니다. 저는 날도 흐리고 광량도 부족하여 잘 안 보일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훨씬 또렷하게 물속이 보여서 신기했습니다.

배를 따라 헤엄치는 물고기들

 

이상하게도 마치 승객들을 위해 큰 물고기들이 계속해서 배와 함께 병주竝走해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원인은 나중에 밝혀집니다. 어떤 여성 분이 커다란 거무스름한 물고기를 보고 “맛있겠…!”라고 외치려다가 말아 승객들의 웃음이 터져나왔습니다. 이 물고기는 열대·아열대 해역에 서식하는 무명갈전갱이라고 하는데, 가이드의 말로는 그다지 맛있지 않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바다뱀, 가시복의 일종, 자리돔의 일종, 싸리의 일종, 놀래기의 일종, 비늘돔의 일종 등등 어류에 대해서는 솔직히 잘 알지 못하지만 다양한 물고기들을 관찰할 수 있어서 재미있었습니다. 의외로 화려해서 독을 품었을 것 같은 물고기는 맛이 있다고 하고, 또 물퉁돔의 일종인 Lutjanus bohar는 아주 맛이 좋아 진미라고 불리지만 개체에 따라 독이 있을 수 있어서 일주일 동안 몸이 마비되는 경우도 있다는 등 흥미로운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물고기들과 병주했습니다.

 

관광선을 따라오는 물고기는 제법 몸집이 큰 녀석들이 많았습니다. 천적이 많은 작은 개체들은 포식자를 피해 공생 관계에 있는 산호초에 몸을 숨기고 있어서 카메라에는 잘 잡히지 않았습니다. 몸집이 큰 무명갈전갱이는 수면 가까이 날고 있는 새를 한입에 삼켜버릴 정도로 먹성이 좋지만, 그만큼 낚시 미끼에도 잘 걸려들어 포획하기 쉬운 개체로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보기 힘든 어종들이 많이 있어서 바다낚시 애호가들이 체험하기에 좋은 관광 코스입니다.

천 살 먹은 산호

 

거대한 산호가 눈에 들어왔는데, 크기로 미루어 보아 천 년 전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여겨진다고 설명합니다. 미야코섬의 가장 오래된 역사 기록보다도 전에 이곳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30정도의 수중 관광을 마치고 다시 계단을 올라가 수면 위로 나왔습니다. 그러자 가이드는 참치를 가공한 먹이를 바다에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과연, 지금까지 큰 물고기들이 우리 배를 따라오고 있었던 건 이 먹이를 먹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물고기들을 학습시켜서 관광객들을 즐겁게 하는 인간과 물고기의 영리한 협업 관계였던 것입니다. 45분 간의 즐거운 경험을 마치고 하쿠아이항으로 돌아왔습니다. 

먹이를 던져주는 가이드

임갸 마린 가든

수중 관광을 마치고 바다가 아름다운 ‘임갸 마린 가든’까지 도보로 이동할 계획이었습니다. 3박 4일로 넉넉하게 일정을 잡아 남는 게 시간이기 때문에, 시간으로 돈을 아낀다는 사고방식입니다. 가는 길에는 큰실말 양식장과, 류큐의 건축 양식보다는 베네치아를 연상케 만드는 신축 호텔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호텔 앞에는 교회도 있는데, 일본 내에서 기독교의 입지를 고려해보면 종교 시설은 아니고 예식장의 목적으로 들어선 모양입니다. 실제로 호텔 맞은편에 있는 시기라 해변에는 신랑 신부가 에메랄드 바다를 배경으로 촬영을 하고 있었습니다.

 

여유롭게 40분 정도 걸을 예정이었으나, 도중에 도로 공사 때문에 보도가 끊겼고 더 이상 걸어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 중국발 콜택시 서비스인 DiDi 택시로 남은 거리를 이동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중국에 있던 시절에 종종 이용했던 DiDi 打車를 일본에서도 쓰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일본의 택시비는 무서울 정도로 비싸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 처음 택시를 이용해보는지라 자동문이라는 사실을 잊고 손을 댈 뻔했습니다. 5분 정도 이동하여 700엔이 청구되었습니다. 단거리라 그런지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나리야마 아구 발상지

 

‘임갸’는 im “바다”와 kjaː “솟아나는 물”의 합성어인 im+gjaː입니다. 바다에 솟아난 물, 즉 해수와 담수가 만나는 곳이라 이런 이름이 붙여진 것일까요? 택시에서 내린 주차장에는 ‘나리야마 아구 발상지’라고 새겨진 큰 돌이 서 있었습니다. 미야코어에서 aːgu [아구]는 “노래”를 의미하는데, 나리야마 아구는 상당히 유명한 미야코 민요라고 합니다. 돌에는 그 가사가 새겨져 있습니다.

 

다리를 건너고 계단을 오르고 전망대에 도착하니 장관이 펼쳐집니다.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음에도 가장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을 이곳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미야코섬에서 꽤 인기 있는 명소인듯 합니다. 비가 오는 와중에도 스노클링을 즐기고 있는 금발의 여성은 제가 언덕을 올라갔다가 돌아오는 동안 계속해서 물 속에서 헤엄치고 있었습니다.

임갸 마린 가든의 경치

 

휴대전화와 카메라를 충전하기 위해 카페를 가려고 검색하는데 근처하는 한 곳도 없었습니다. 호텔 주변이라 그런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주로 호텔 투숙객으로 추정됩니다. 따라서, 일반 관광객을 위한 편의 시설이 전혀 갖추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카페를 찾으러 길을 헤매다 논밭이 펼쳐진 마을까지 들어왔는데, 미야코섬의 특산품인 사탕수수가 심어져 있었습니다. 미야코섬 농가의 특산품은 최근에는 망고와 바나나 같은 과일도 많지만, 오래 전부터 재배해오던 주요 작물은 역시 사탕수수와 담배입니다. 미야코어로 사탕수수를 buːgz [부그]라고 하는데, 섬 각지에서 웬만하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탕수수 밭

 

가까스로 찾은 ‘섬 cafe 툰카라야’에서 휴대전화와 카메라를 충전하며 아이스 커피를 마셨습니다. 이곳 테라스석 바닥은 백화된 산호 조각들로 아름답게 조경되어 있었고, 아까 보았던 산호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어 뷰가 아주 좋습니다. 에어컨 바람을 쐬며 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충전을 마치고 신자토공민관앞新里公民館前 정류소에서 교에이 5계통 버스에 탑승했습니다. 오늘의 마지막 스폿을 향하기 위함입니다.

아리랑의 비

나베야마 정류소에서 하차했습니다. 탑승하면서 목적지를 말씀드렸을 때 기사님이 5초 정도 고민하고는 “아, 거기인가”하고 혼잣말을 내뱉었는데, 반응으로 보아 거의 이용되지 않는 정류소인듯 했습니다. 사탕수수가 심긴 밭을 배경으로 “노래방 있어요!!”라는 현수막이 눈에 들어와, 이런 시골에도 노래방이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좀 있다 의도치 않게 이 노래방을 방문하게 됩니다.

 

정류소에서 15분 정도 비포장 도로를 걸어서 들어갔습니다. 양 옆으로는 밭이 펼쳐져 있고, 비가 온 탓에 길에는 물웅덩이가 가득했으며, 외양간에는 소가 울고 있었습니다. 한국의 시골 농촌과 별반 다르지 않은 풍경입니다. 그러나, 나베야마 정류소 근처의 이곳 평범한 시골 마을에는 스스로도 식량 부족에 시달리면서 먼저 아사한 병사들을 소각해야만 했던 일본인 병사와, 비단 공장에서 일하게 해준다는 말에 속아 위안소에 강제 연행되어 성착취를 강요당한 조선인 소녀들의 기억이 있습니다.


보충병인 우리도 굶으면서 아사한 병사의 시체를 소각하는 미야코여, 8월은 지옥

 

1981년 아사히 신문에 투고된 이 노래의 배경은 태평양 전쟁 시절로 거슬러올라갑니다. 일제시대 조선과 북만주를 거친 뒤 위생병 보직으로 미야코에 배치된 보충병 다카자와 요시토高澤義人는 아사한 병사의 시체를 소각하는 업무를 맡았습니다. 그가 부른 노래를 새긴 비석은 전쟁의 참혹함을 기억하고 반전과 평화를 맹세하고자 2005년에 건립되었습니다. 이 비석을 옆으로 돌아 들어가면, 전쟁 중 미야코섬에 설치된 위안소와 조선인 위안부를 기억하기 위해 건립된 ‘아리랑비’가 나옵니다.

아리랑비 전경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전쟁 중에 류큐제도에도 위안소가 설치되어 조선인 위안부들이 성착취를 당한 역사가 있습니다. 한일 공동 ‘일본군 위안소’ 미야코섬 조사단에 따르면, 지금까지 도카시키渡嘉敷에서 위안부 생활을 한 1925년생 구순희具順喜 씨, 자마미섬座間味島에 끌려온 1921년생 전재순全在順 씨, 오키나와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폭격으로 손목을 잃은 1920년생 이춘월李春月 씨, 그리고 미야코섬에 강제 연행된 1921년생 박재남朴載男 씨가 확인되었습니다.

 

그러나 류큐제도에 있던 위안부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 시점에는 미야코섬에 있던 박재남 씨를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은 이미 사망한 상태였습니다. 박재남 씨는 비단 공장에서 일을 하게 해주겠다는 면 서기에 말에, 1937년 2월 경상북도 영양군의 경찰서를 거쳐 배를 타고 일본에 도착했습니다. 일본에 도착하고 실제로 6개월 간 비단 공장에서 일을 했지만, 그 뒤 미야코섬에 끌려가게 됩니다. 미야코섬에서 4년 간 일본군 위안소에서 위안부로서 생활하며, 하루에 적으면 대여섯명, 많으면 15–16명의 군인을 상대하는 지옥과 같은 생활을 강요당했습니다. 증언에 따르면, 병에 걸려 음식을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몸이 허약해져 2개월 정도 일본군의 상대를 할 수 없게 된 적도 있었습니다. 교통 접근이 다소 불편한 곳이지만 많은 생각을 안겨주는 기념물들이었습니다.

지요다 식당

두 가지 비석을 보고 돌아왔는데 버스가 오기까지 한 시간 넘게 여유 시간이 남아 저녁식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노란 배경 간판의 ‘지요다 식당’에 들어갔는데, 어르신들이 옛날 구수한 노래를 부르며 식사를 하고 계셨습니다. 식당이 아니라 어르신들의 가라오케 바였던 것입니다. 주인장은 시끄러워서 미안하다고 연신 고개를 숙였는데 저는 오히려 라이브 공연을 들으며 식사를 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가라오케 바

 

이 식당에 젊은 사람이 오는 것이 드문지, 주인장은 저보고 자위대 사람이냐고 물어봤습니다. 근처에 일본 항공자위대 기지 소속의 병사가 가끔 이곳에 방문하는 일이 있는가 봅니다. 그러나 저는 대한민국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전역한 예비군입니다. 고야 찬푸루를 주문했습니다. 고야는 쓴 맛이 매력인 여주의 오키나와어입니다. 미야코어로는 goːra [고라]라고 하는데, 관광지라 그런지 요리 이름은 오키나와어를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니면 55세 밑으로는 미야코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어진 영향인지도 모릅니다.

고야 찬푸루

 

우엉 무침과 김치가 밑반찬으로 나왔습니다. 여주, 달걀, 두부, 양파가 함께 볶아져 나와 맛이 있었습니다. 점심에 이미 아와모리를 마셨지만 참지 못하고 오리온 생맥주를 주문하여 마셨습니다. 저도 한 곡 하고 싶어졌으나, 음식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려 오늘의 막차 시간대가 다가오고 있었으므로, 서둘러 먹고 정류소를 향했습니다. 이번에도 탑승한 것은 교에이 5계통입니다.

2일차 마무리

오늘은 미야코섬의 남쪽 바다를 위주로 관광하였습니다. 내일부터는 많은 양의 비가 내릴 것으로 예보가 나와 있기 때문에 미리 바다를 봐둔 것은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내일은 미리 택시를 대절해두었으니 오전에는 차를 타고 쾌적하게 드라이브를 즐길 계획입니다. 1일차에 건넌 이라부 대교 말고도, 미야코 섬에는 구리마 대교와 이케마 대교가 더 있습니다. 각각 왕복한 뒤 오후에는 박물관과 식물원을 위주로 실내 관광을 진행합니다.

 

3일차에 만난 택시 기사님은 정말로 재미있는 분이셨습니다. 3시간 동안 쉴 새 없이 이야기했고 이 섬에 대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미야코섬의 베스트 1위 바다와 워스트 1위 바다, 미야코섬에서 반드시 먹어야 하는 음식, 식당과 과수원 랭킹 등 역시 현지인답게 정보의 질과 양이 풍부했습니다. 호탕한 성격의 기사님은 관광업으로 먹고 산다면 당연히 관광객에게 최선의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13,000엔이 아깝지 않은 최상의 가이드를 해주셨습니다. 그러면 여행 3일차 포스팅을 기대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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