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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한자학

한자 약자의 4점 중첩 부호의 기원을 찾아서 (미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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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첩부호의 설명

 

조선시대 문헌에 나타나는 속자俗字에는 2점 중첩부호와 4점 중첩부호가 활발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이중 주로 글자 내의 동일 단위체가 상하 대칭(기하학적 정의가 아님)으로 배치되어 있는 경우에 하단의 단위체를 2점 중첩부호로 치환하는 약자 형성 방식은 중국에서 발생하여 주변 한자문화권 국가로 확산된 국제 속자입니다. 그러나 品과 같이 동일 단위체가 상단에 하나, 하단에 둘 배치되어 있는 경우(이를 品字 꼴이라고 함)에 하단을 4점 중첩부호로 치환하는 약자 형성 방식은 중국 문헌에서는 확인되지 않고, 오로지 한국과 일본에서만 나타나는 역외域外 약자 형식입니다. 다만 品字 꼴이 아닌 좌우 대칭 단위체를 4점 중첩부호로 대체한 속자는 중국을 포함한 한자문화권 전역에서 나타납니다. 등이 그렇습니다.

 

중국의 저명한 한자학 연구자인 허화전何華珍(2004)은 “同一漢字內相同的對稱性部件省爲,爲我國書寫的旣有習慣,但品字形結構下部省略爲,這恐怕日本人的傳統積習”라고 기술하였는데, 허화전·후이리胡伊麗(2021)에서 “此類符號替代俗字,廣泛流播於域外漢字圈,有的成爲國別俗字”와 같이 品字 꼴의 4점 중첩부호가 일본에서만 한정적으로 사용되었다는 기존의 인식을 바로잡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관습이 어디에서 발원하여 어떤 방식으로 전파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4점 중첩부호 ‹› 의 기원과 확산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는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헌에서 이들 용례를 추적해야 합니다. 일본에서는 한자학 연구자 기쿠치 게이타가 17세기 에도 시대 이전의 문헌에 대해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조사 대상 가운데 무로마치 시대 이후에 성립 혹은 필사된 자전류 중에는 사본에 따라 4점 중첩부호를 사용한 品字 꼴 약자가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습편목집拾篇目集(무로마치 중기 필사)에 1례, 앞의 책 1556년본에는 3례, 《음훈편립音訓篇立(무로마치 말기 – 에도 필사)에 2례가 확인됩니다(기쿠치 2021:136). 조사 대상에 포함된 언어 사전류에서는 쓰쿠바대학본 《하학집下學集(무로마치 중기 필사)부터 4점 중첩부호의 사용이 확인됩니다(앞의 책:138). 따라서 일본에서는 늦어도 무로마치 중기, 즉 15세기 이래 4점 중첩부호의 사용이 확산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역사 문헌에서 속자의 중첩부호를 문헌 별로 찾아 정리한 연구를 저는 찾지 못하였으나, 조선후기 민간 방각본 자료를 조사한 하영삼(1996:134–5)에 좌우 대칭인 단위체와 品字 꼴의 하단 단위체에 대하여 4점 중첩부호로 치환한 사례가 구별 없이 함께 나열되어 있습니다. 민간 방각본 자료는 18세기 말부터 생산되기 시작하여, 현재 시중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은 주로 19세기 중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인쇄본입니다. 펑루馮璐·왕핑王平(2022:106)에는 品字 꼴에 4점 중첩부호가 적용된 한국 약자 ‹›와 ‹› 두 글자 제시하는데, 출전은 모두《동한역어東韓譯語(1789년)로 역시나 18세기 말 문헌입니다. 《한국문집총간》을 중심으로 한국 이체자를 조사한 조성덕趙成德(2008:351) 역시 4점 중첩부호가 조선 후기 필사본과 활자본에서 나타난다고 기술하였습니다. 허화전 외(2021)은《한국금석문집성》《고려대장경》 등 다양한 시기의 한국 문헌을 조사하였는데, 4점 중첩부호의 용례에 대해서 명시하지 않았습니다.

 

현재 제 수중에 있는 자료만을 보면 한국에서 4점 중첩부호는 일관되게 조선 후기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으로 나타나지만, 통시 자료를 총체적으로 조사한 연구가 아니므로 시기를 단정하는 것은 섯부른 판단이 될 우려가 있습니다. 단국대학교 한문교육연구소에서 2022년에 구축한 《한국역대한자자형자전》 데이터베이스가 일반 공개되어, 한국 한적漢籍의 통·공시적 자료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면, 한국에서 品字 꼴의 출현 시기와 배경 등에 대한 조사가 용이해질 것입니다. 저 혼자만의 힘으로는 방대한 양의 문헌을 일일히 검토하기 어려우므로, 《한국역대한자자형자전》 데이터베이스가 일반 공개된 이후에 이 글을 갱신하려고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조선 후기에는 대칭이 아닌 단위체에 대해서도 4점 중첩부호가 생산적으로 활용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후의 내용은 《한국역대한자자형자전》 데이터베이스 공개 전까지는 작성을 보류하겠습니다.

 

  • 何華珍(2004)《日本漢字和漢字詞硏究》中國司會科學出版社
  • 何華珍·胡伊麗(2021)〈韓國變異俗字類析〉《漢字硏究》31:13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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